"아무나 못 산다"…수천만원 프리미엄 붙은 명품 뭐길래 [현장+]

한달새 확진자 1000만명 육박
날씨 포근해지면서 오픈런 행렬 늘어나
전날 낮부터 수십명씩 '장사진'
지난 29일 밤 11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건물 뒷편에는 100여명의 시민이 장사진을 이룬 채 줄을 지어 있었다. 다음날 롤렉스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선 줄이었다. 안혜원 기자
"대기 1번으로 들어가려면 전날 낮 12~1시부터는 줄을 서야 해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한 달 새 전국적으로 1000만명 가까이 쏟아져나오는 와중에도 대기하다 명품을 사려고 아침 개장과 함께 달려가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 봄이 온 것도 영향을 줬다. 날씨가 포근해면서 장시간 줄을 서는 이들이 늘어났다.특히 리셀(resell·되팔기) 시장에서 프리미엄(웃돈)이 많이 붙는 브랜드로 꼽히는 롤렉스 매장에 입장하려면 최소 하루 전날 오후엔 줄을 서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9일 밤 11시쯤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건물 밖에는 100여명이 장사진을 이뤘다. 백화점은 이미 폐점했지만 건물 뒤편으로 노숙 행렬이 상당했다. 다음날 롤렉스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선 줄이었다. 봄 날씨라곤 하나 밤엔 꽤 쌀쌀해 두꺼운 옷과 여러 겹의 담요로 무장한 이들은 근처 화단 난간에 걸터 앉거나 서 있었다.

가장 앞줄에 서 매장 오픈 시간을 기다리던 30대 A씨는 “롤렉스 시계를 사려고 낮 12시부터 서서 기다렸다”며 “한파가 몰아치던 한겨울에도 밖에서 꼬박 밤을 새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형편이 낫다. 날씨가 풀리면서 줄을 서는 인원도 많아져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대기 명단에 이름도 올리기 힘들다”고 했다.이튿날인 30일 오전 10시30분 입장 시간까지 만 하루 가까이 밖에 서 있어야 하지만 1등으로 줄을 서려는 경쟁이 치열했다고 A씨는 귀띔했다.
지난 29일 밤 11시쯤 서울 영등포구의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건물 뒷편 롤렉스 매장에 들어서기 위한 100여명의 오픈런 행렬. 매일 개장 직후 45명씩 입장 예약을 받는 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줄을 선 이들의 절반 이상은 밖에서 내내 밤을 새고도 매장 구경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 안혜원 기자
오픈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텐트족으로 몸살을 앓던 해당 백화점은 이달 중순부터 텐트나 침낭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같은 오픈런 행렬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 이날 줄을 선 이들은 40번대 대기 번호를 받으려면 적어도 전날 오후 3시부터는 줄을 서야 한다고 했다. 매일 개장 직후 45명씩 입장 예약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이날 줄을 선 이들의 절반 이상은 밖에서 내내 밤을 새고도 매장 구경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밤 11시 훌쩍 넘어 백화점에 도착한 일부 시민들은 생각보다 줄이 길자 허탈해하며 돌아가기도 했다.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롤렉스 오픈런을 하려고 휴가까지 냈는데 전날 밤에 줄을 서도 입장을 못할 만큼 치열할 줄은 미처 몰랐다. 대기하는 곳이 실외인데 도대체 몇 시간씩 줄 서야 매장 문턱을 밟아볼 수 있는 거냐”며 황당해 했다. 국내 명품시장에서 오픈런 열기가 가장 뜨거운 명품 브랜드로는 롤렉스와 샤넬이 꼽힌다. 최근 샤넬의 인기가 한뿔 꺾이면서 분산된 명품족들이 롤렉스, 에르메스 등 최상급 명품으로 더 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롤렉스 제품들. /한경DB
특히 롤렉스 제품에는 독특한 영업 방식 때문에 대다수 모델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이상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연초 롤렉스는 2년여만에 가격 인상에 나섰는데 되레 이 때문에 프리미엄도 더 치솟는 분위기다. 롤렉스는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VIP(우수고객) 소비자에게 우선적으로 인기 제품을 구매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 2억~3억원짜리 시계를 구매해야 인기 품목을 살 수 있는데 값이 인상된 만큼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리셀 시장에서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예컨대 2억원을 쓰고 4000만원짜리 시계를 사느니, 리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주고 7000만원에 구입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공식 매장에서 15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데이저스트 36사이즈 모델은 리셀가가 2000만~2300만원에 형성돼 있다. 이른바 ‘헐크’로 불리는 서브마리너 그린 모델은 단종 이후 프리미엄이 치솟았다. 2017년 리셀가 900만원대에 판매됐는데, 현재 2000만원대 중후반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일부 모델은 3000만~4000만원까지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도 있다. 오픈런으로 구매에 성공하면 어지간한 직장인의 연봉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이같은 명품 오픈런 행렬이 줄지 않으면서 매장은 물론 백화점들은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매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달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를 분석해보면 오프라인 유통업체 중 백화점(롯데·현대·신세계)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9.3% 증가했다. 백화점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월보다 32.5% 급증하며 품목 중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백화점 매출 가운데 해외 유명 브랜드 비중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비중은 지난해 3분기 33.4%, 4분기 32.6%에서 올해 1월 32.1%로 감소세를 보여왔지만 지난 2월 37.3%로 다시 늘어났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