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 시대, '대리효도자'는 가족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노인·자식·요양보호사 삶 담아
한국 사회에서 '100세 인생'은 과연 축복일까. 노인 빈곤율과 복지 사각지대, 거기에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빠듯한 각자도생의 시대상을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은 부모와 내 인생을 사느라 부모를 직접 모실 수 없는 자식은 결국 요양병원이나 요양보호사를 찾아간다.

노인들은 그곳에서 '대리효도'를 받으며 이따금 찾아오는 자식을 기다린다. 갑작스럽게 노인의 새 가족이 된 사람들은 '진짜 가족'을 대체할 수 있을까.

박경목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이런 각자도생의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톺아본 작품이다.

우리 모두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겪었거나 혹은 언젠가 겪게 될 일을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살펴봤다.
영화는 여든다섯의 노인 말임(김영옥 분)과 외아들 종욱(김영민) 그리고 그가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 세 명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대구에 사는 말임은 어느 날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팔을 다친다.

종욱은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입원한 어머니를 며칠간 돌보지만, 퇴원과 동시에 집으로 미선을 불러들인다. 말임은 미선이 영 마뜩잖다.

하루 세끼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좀 하다가 말동무를 해주는 일밖에 하지 않으면서 아들에게 월 150만 원씩이나 받아 가기 때문이다.

종욱 역시 맘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재취업에 매달리는 형편이고, 은행원인 아내가 간신히 어린 딸과 남편을 건사한다.

서울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올 수도, 자신이 대구 집으로 내려와 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선은 특유의 싹싹한 성격으로 말임을 그럭저럭 잘 모신다.

종욱이 집안에 설치해놓은 감시 카메라가 거슬리긴 하지만, 이 일이라도 해야 어머니의 병원비를 낼 수 있다.

미선은 말임을 돌보는 업무가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가 입원한 친어머니 병간호를 한다.

그는 밀린 병원비 때문에 말임의 돈을 가로채거나 종욱이 보내준 먹을거리를 빼내어 가기도 한다.

욕을 된통 먹고 경찰에 잡혀가도 싼 인물이다.

그러나 관객은 미선에게서 연민이나 일종의 동질감마저 느낄 듯하다.

'나였더라도' 미선과 비슷한 선택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선은 말임을 진정 가족으로 대했다.

굶고 있을 말임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밥을 차려주고 쓸쓸했을 연휴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말임 역시 갈 곳 없는 미선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하면서 두 사람은 비로소 진짜 가족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주요 인물 중에서도 악역은 없다.

남에게 어머니를 맡긴 종욱도, 간호 비용을 감당하다 지친 며느리도 모두 이해 가능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심지어 말임에게 "노인네와 놀아준 걸 감사히 여기라"고 말하는 이웃집 중년 여자에게서도 노인을 향해 시혜적인 시선을 보냈던 우리의 모습이 보여 뜨끔한 마음도 생긴다.

'말임씨를 부탁해'는 모성애와 효도를 일차원적 감성으로 풀어나간 작품도 아니고, 노인복지 제도의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해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고령화 사회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점점 더 늘어가는 노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숙제를 남기는 영화다.

꽉 짜인 스토리와 유려한 연출을 자랑하지는 않아도 박수받아 마땅한 시도다.
연기 인생 65년 만에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은 김영옥은 탄탄한 내공만큼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꼭 어딘가에 있을 법한 괴팍하면서도 따스한 할머니로 말임 역을 소화했다.

그간 조·단역을 주로 맡았던 박성연은 최고의 호연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안긴다.

미선이라는 캐릭터가 밉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연기 공이 크다.

특히 말임의 가족과 만났을 때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연기다. 다음 달 13일 개봉. 상영시간 110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