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 끝났나…미술 경매시장 '주춤'

3월 경매 239억…전년비 13억↓
3040작가 작품값 상승세 멈춰
"가격 너무 올라 투자수요 줄어"

"부자들, 안전자산으로 인식
장기적 투자 전망은 밝아"
지난해 미술시장은 유례없는 ‘불장’(불같이 뜨거운 상승장)이었다. 시중에 막대한 유동자금이 풀린 덕분이었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등으로 인해 암호화폐와 주식시장은 고꾸라졌지만, 미술시장은 끄떡없었다. 선착순으로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 앞에는 전날 밤부터 텐트가 줄을 지었고, 아트페어 개막 직후에는 ‘오픈런’이 펼쳐지기도 했다.

미술시장은 언제까지 ‘나 홀로 호황’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감정평가에도 참여한 유력 미술 관련 단체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미술시장이 정점을 찍고 보합세로 전환했다”는 분석을 내놔 눈길을 끌고 있다.

○뚜렷해진 경매시장 보합세

31일 센터의 ‘3월 국내 경매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양대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3월 경매의 총 낙찰금액은 각각 165억원과 72억9000만원에 달해 총 237억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낙찰률은 두 경매사 평균 84.8%였다. 지난해 3월 경매와 비교했을 때 낙찰률은 비슷하지만 매출이 약 13억원 감소했다. 이명선 센터 실장은 “일반적으로 3월은 한 해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라 의미가 있다”며 “시장이 뚜렷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과는 “미술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에 한참 못 미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작품값이 너무 올라 살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탓이다. 박서보, 정상화 등 국가대표급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많이 오른 탓에 상승 여력이 없다는 게 센터의 분석이다. 그동안 시장을 주도해온 이우환 작품 역시 개인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30~40대 작가들의 작품값 상승세가 멈춘 것도 경매시장 둔화에 한몫했다. 신진 작가들은 지난해 미술 투자 광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으로 꼽힌다. 수백만원에 출품된 작품이 치열한 경합 끝에 수억원에 낙찰되는 드라마틱한 경매 과정이 2030세대를 대거 미술시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센터는 “최근 신진 작가들의 작품 중 상당수가 가격 하락세를 보이자 투자 수요도 줄고 있다”고 했다.

○“작품 잘 선별해야”

불장이었던 지난해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미술품을 골라잡아도 어느 정도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보합세에 접어든 지금은 투자 결정을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센터는 조언한다. 다만 센터는 장기적으론 미술시장이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실장은 “불안한 세계 정세 때문에 현물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며 “미술품은 여러 세제 혜택이 있어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부자들이 그림을 안전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회계기업인 딜로이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자산 5000만달러(약 6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의 자산에서 예술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 전문가와 은행 관계자 등 총 38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가 자산 다각화 수단으로 예술품을 진지하게 고려한다고 답했다. 1년 전에 비해 무려 32%포인트나 상승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