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왈츠가?[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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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명의 사람들이 456억원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곧장 떠오르시죠.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K콘텐츠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입니다. 기훈(이정재 분)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형형색색의 계단을 지나 게임 장소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면 그곳은 곧 핏빛으로 물들게 됩니다.
혹시 이 장면들에 나온 음악을 기억하시나요. 내용은 잔인하지만 음악은 슬프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오히려 밝고 경쾌하죠. 오스트리아 출신의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가 만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란 곡입니다. '쿵짝짝' 3박자의 전형적인 왈츠 음악입니다.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게임에 춤곡이 울려 퍼진다니 놀라운데요. 모순되게 느껴지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 음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고 있습니다. 매년 1월 1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신년음악회에서 연주하는 고정 앙코르곡이기도 합니다. '타이타닉'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다수의 영화에도 나왔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됐을까요. 이 음악은 슈트라우스 2세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866년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국민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고, 그는 위로의 마음을 담아 작곡을 했죠.
오징어 게임에서 이 곡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게임 참가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해야하는 기묘한 상황, 그 안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상반된 분위기의 왈츠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비롯해 다양한 왈츠 음악을 만들었는데요. 다수의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왈츠 음악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을까요. 경쾌한 음악이 떠오르는 화사한 봄날, 슈트라우스 2세의 삶 속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먼저 그의 성 뒤에 왜 굳이 '2세'를 붙여 말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버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아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로 불리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부자(父子) 모두 왈츠 음악의 대가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왈츠의 아버지', 아들은 '왈츠의 왕'이라고 각각 불리죠.
두 사람의 음악 모두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들어보시면 매우 익숙하고 친근하실 겁니다. 슈트라우스 1세가 만든 '라데츠키 행진곡'도 자주 울려 퍼지죠. 이 음악도 빈 필하모닉이 신년음악회 마다 연주하는 앙코르곡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평범한 부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아버지는 잘 나가는 스타 음악가였는데요. 가정을 지키지 않고 연주 투어를 다니며 숱한 염문을 뿌리고 다녔죠. 그럼에도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아버지처럼 왈츠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은행가나 법률가가 되길 원했죠. 하지만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음악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들켜 심하게 맞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채찍질까지 당할 만큼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슈트라우스 2세를 딱하게 본 스승 안톤 콜만이 그를 도와줬습니다. 덕분에 그는 19세에 15명으로 구성된 악단을 꾸리게 됐습니다. 무도회에서 작곡한 곡들도 처음 발표했는데요.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호평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아버지가 그를 막아섰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아들에게 일거리를 주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스타 음악가인 아버지의 압박에 많은 음악계 사람들이 그와 거리를 뒀죠. 결국 그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멀고 작은 시골에서 일거리를 구해 어렵게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유별난 행동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요. 아버지가 아들이 험난한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길 원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아들의 재능을 크게 질투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를 계속 배척한 거죠. 부자가 좋은 음악을 함께 만들고 시너지를 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슈트라우스 2세가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입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날개를 되찾은 것처럼 승승장구했죠.
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작곡과 공연을 요청했습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악단 멤버들을 자신의 악단에 데리고 와 규모를 키웠습니다.
아버지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의 명성은 아버지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아버지가 왈츠 음악을 발전시켰다면,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 음악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도 초반엔 아버지처럼 무도회에서 춤을 추기 위한 반주 정도로 왈츠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860년대 후반부터 달라졌습니다. 춤 반주가 아닌 감상을 위한 독립 음악 장르로 재탄생 시킨 것이죠.
이를 위해 그는 도입부를 길고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고, 관현악 편성으로 더욱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왈츠 음악은 무도회장에서 콘서트홀로 옮겨가 울려 퍼지게 됐습니다.
슈트라우스 2세가 만든 왈츠 음악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봄의 소리 왈츠' 등을 비롯해 500여 곡에 달합니다. 어쩌면 아버지로 인해 혹독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열심히 창작 활동에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슈트라우스 2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곡을 하게 하는 것들 중 이게 제일 중요한데, 지갑이 텅 비면 무슨 곡이든 만들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된다는 거지."
그의 재능과 잠재력은 이런 노력과 만나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오페레타로도 영역을 확장해 '박쥐' '베니스에서의 하룻밤' 등 총 16편에 이르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바그너 등 거장들도 슈트라우스 2세의 실력을 인정했습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악보에 이런 글귀를 적었습니다. "불행히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님." 화사하고 따뜻한 날,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보면 자연스레 좋은 음악들이 듣고 싶어집니다.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만큼 이 순간에 잘 어울리는 곡들이 있을까요. 오늘만큼은 짜증 나고 우울한 감정은 잊고, 왈츠 선율에 맞춰 살랑살랑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