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석 칼럼] 미디엄 칼럼니스트와 AI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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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이 글은 두 가지 생각이 엉켜 있다. 하나는 미디엄(Medium) 칼럼니스트이고 두 번째는 인공지능(AI) 주역이다.
북저널리즘 시대와 3천년 된 주역의 AI 진화
최근 금융 회사 등에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자산관리, UAM(Urban Air Mobility)' 등 모빌리티(mobility) 금융, 디지털 뱅킹, 데이터 등에 관한 글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참고할 인공지능 관련 책을 보다가 병행해서 예전에 본 3천여 년 전의 주역을 보는데 묘한 생각이 들었다.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64괘를 512괘, 4,096괘으로, 아니 16,777,216괘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필자의 병적인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미디엄 칼럼니스트(medium columnist)
필자는 사서삼경을 포함한 유불선 기독교와 동서양 고전 등을 대략 훑어본 편이다. 최근에도 주(週)에 두세 번 서점에 들러 하는 책 사냥이 취미다. 수년 전부터 술을 잊어버린 후부터는 신간은 물론이고 예전 본 책을 다시 찾아보며 새롭게 느끼는 점과 놓쳤던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일이 새벽 일상이 되었다.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즐거운 일이고 유익한 일이다.본업이 금융 이어서인지 보는 세상사 모든 일을 숫자로, 돈(가치)으로 따져본다. 사실 국가, 사회의 모든 언어는 결국 숫자와 돈으로 귀결된다. 국가 간의 전쟁도 대부분 돈 때문이다. 숫자화 되지 않은 사업계획서, 기획서는 소설에 불과하다.
더구나 감사업무를 약 4년간 한 덕분에 이를 논리적으로 따져 기승전결로 정리하며 필자의 의견과 대안을 창의적이고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일이 제법 훈련이 되어있는 편이다.화두로 잡은 관심사에 사실관계를 따지고, 역사와 동서고금 사례를 문헌(인터넷)을 통하여 비교 분석하며, 현행 법률과 규정, 관례, 상식 등을 따져 분석하고 심사하여 1차 감사보고서 형태로 만든다. 물론 한 사안의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글이 출발하지만 이와 관련한 과학기술, 이해관계자들, 다양한 시선을 융복합 하여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개가 잡힌 1차 감사보고서에 사안의 경중 대소를 가려 감사처분(상벌) 내용을 담고 재발방지, 혁신을 위하여 대안까지 내놓는 형태로 글을 쓴다. 당연히 필자의 글은 일반 칼럼보다 2~3배 길다. 일반 칼럼은 글자 크기는 10pt이고 줄 간격 160% 기준 A4용지 1장 반~2장 사이이다.
일반 저널리스트의 칼럼은 통상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까지가 주목표라면 필자는 한 주제에 대하여 객관적, 종합적으로 독자와 함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필자의 개인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 대안이 완벽하지 못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길을 필자와 독자가 바라보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려면 짧은 글로서는 불가능하다.일반적인 짧은 글(숏 폼, Short-form)은 시원한 면은 있지만 압축적으로 글을 써야 하므로 작가의 의도한 바 대로 필요한 사실만 발췌, 인용하며 정해진 결과로 몰아간다. 확증편향을 원하는 독자나 주관 없이 읽다 보면 작가의 의도에 끌려가 흑백 논리인 이분법 늪에 빠진다.
당연히 글 자체도 선동적이고 자극적으로 써야 읽히는데 자칫 잘못하면 준비가 덜 된 독자에게는 독(毒)이 될 수가 있다.
책(롱 폼, Long-form)이나 논문 식 글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면 좋지만 일반 독자들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필자 같은 A4 기준 5매 내외의 중간 정도의 글이 의외로 고정 열독자도 많고 글이 오래가며 인기가 늘고 있다. 일회성 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 블로그 등에 게재(전재)되어 유용하게 인용, 참고 글이 된다.
필자는 초벌 글을 개인 브런치(brunch)에 올리고 며칠 숙성시키며 수정을 한다. 그렇게 싸인 글이 200편 정도 되는데 글을 올리지 않아도 매일 수백 건 씩 구독이 되고 있다. 최근 짧은 시간에 유용한 지식 탐구 수요가 늘어서 10분에서 20분 안에 읽을 수 있는 유료 미디엄 폼(Medium-form) 전자책(pdf) 글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책 한 권 가격, 신문 구독료 수준인 월 19,000원에 깊이 알아야 할 모든 주제를 이용할 수 있는 지식 콘텐츠 유료 구독 서비스 ‘북 저널리즘’ 시대가 도래했다. 운 좋게 필자의 글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흐름을 타게 되었다. 일반 칼럼보다는 특화하여 긴 필자의 칼럼이 '미디엄 칼럼니스트(medium columnist)'로 만들어 주었다고 나 할까?
다만 아쉬운 것은 독자가 있는 글에는 간결한 감사보고서나 감사처분서와 달리 문학적 표현과 재미(fun)가 곁들여져야 하는데 필자는 이 부분이 부족하다. 몇 번 기교를 부리려 했지만 어색하여 포기했다. 이는 아직 아는 지식을 잘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고 좀 더 많은 수양과 공부로 내공을 쌓아 고 도화하며 극복해야 할 필자의 숙제다.
3천 년 전 주역 창작자에게 컴퓨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굴곡이 심한 길을 장시간 버스 타고 가면 두 종류의 사람은 차멀미를 안 한다. 운전자와 의자에 기대어 푹 자고 있는 사람이다. 운전자는 차가 쏠리는 방향으로 몸을 같이 움직이며, 자는 사람은 버스의 흔들림에 저항하지 않고 혼연일체가 되기 때문이다. 운전자는 변화에 잘 대처하는 능변(能變) 자이고 자는 사람은 능변 할 일조차 없는 자연 상태에 무의식 상태이다.봉변(逢變)은 뜻밖의 변을 당하는 것이다. 인생은 24시간 365일 변하는 자연, 인간, 기술 등 문명의 변화에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 적응하는 일이다. 누구는 일이 닥쳐서 허겁지겁 대응하고 누구는 미리 예방하며 변화에 적응한다. 인생길 가면서 봉변(차멀미) 당하지 않으려면 변화를 미리 알거나, 변화가 갑자기 닥쳤을 때 즉각 올바른 대초 방법을 평소 훈련한 대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
주역은 3천 년 전에 운전자처럼 길을 잘 보고 갈 수 있도록 만든 비결서다. 버스가 다니는 꾸불꾸불한 길은 변화무쌍한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유형(pattern)이 있듯이, 인생사도 나(단체, 나라 등)와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과 관련된 가족, 직장, 사회, 국가에서 부딪히는 사람과의 보편적인 유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다만 시대에 따라 경우의 수와 조건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주역은 음양(2)과 사상(4), 팔괘(8)를 바탕으로 64가지의 유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운전면허증을 따듯이 64가지의 패턴을 충분하게 공부하고 익히면 어떤 상황에서도 최적의 길을 찾게 해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작자미상 '자가 만든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책을 읽다가 병행해서 3천여 년 전의 주역을 보는데 묘한 생각이 든다. 3천여 년 전 주역을 기획할 때 컴퓨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두어서 정교한 예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주역과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비슷한 면이 있다. 주역의 점술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식체계 가운데 하나이며, 인공지능은 인류가 만들어낸 과학의 발명 가운데서도 디지털 혁명시대 최전선에 서 있는 지식체계이다.
기호학(Semiotics)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호의 기능, 본성, 법칙, 관계, 표현을 규명하고, 이를 활용한 의미의 생산과 해석, 공유, 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 철학과 그 뿌리를 같이하나, 현대에 들어 논리 실증주의가 나타남과 함께 체계화되어 점차 다양한 분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주역과 인공지능 둘 사이에는 대역사(big history) 시야로 보면 기호학 전인 측면에서 유사성이 크다.
첫째, 인공지능과 주역은 인공언어를 사용하는 기호 체계에 의지한다. 둘째, 점술과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모방과 재현에 있다. 셋째, 인공지능과 주역은 모두 추리 과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알고리즘(algorithm)에 의지하며, 그 알고리즘은 이진법(二進法)을 기본적 수단으로 삼는다. 넷째, 주역과 인공지능은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비(類比, Analogy)의 방법에 의존한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 닮은 점이 있다고 해서 주역이 과학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리가 먼 것 같은 두 지식체계 사이에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문명의 본질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최근 인공지능 책과 주역 책을 병행하여 보다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64괘를 4,096괘로, 아니 16,777,216괘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역을 당시 '작자미상 '자 데이터, AI 등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원래 무인 태극에서 음양 2를 사상 4로 이를 8괘로 만들었다. 8괘를 상하로 붙여서 64괘를 만든 것이니 반도체 황의 법칙처럼 배수를 늘려가면 어려울 일은 없어 보인다. 당장 8괘를 상하가 아닌 상중하로 3괘를 한 짝으로 만들면 512괘의 유형이 만들어진다.
또 4괘, 8개를 한 짝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효의 성격을 특정하여 해석을 하면 지금보다는 엄청나게 정교한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이미 인공지능을 이용한 주역 연구 논문이 여럿 보이는데 전자 사주처럼 기존 틀 안에서 분석 데이터베이스 (DB)를 활용하려는 수준이다.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당초 만든 작자와 대화하듯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 컴퓨터 등 도구 없이 인간의 두뇌를 이용할 수 있는 한계가 64괘 384 효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주역을 만든 지 3천 년이 지난 현재는 주어진 경우 수는 훨씬 더 많아졌다.
주역과 인공지능은 미지(未知)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하여 지능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주역의 점술 과정에 개입하는 지능이 어떤 종류의 지능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성격에 대해서도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미지의 주체에 의해 운용되는 지능은 우리에게 신비롭고도 두려운 존재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의식 있는 존재만이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간주했던 전통 철학의 관점에 도전을 던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호를 매개로 진행되어 온 문명의 발전 과정이 이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하여 일상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인공지능이 늘어나면서 인공지능의 결정과 행위가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윤리 문제가 부각되어 논의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보편성과 상황성을 아우르는 주역의 도덕 체계가 인공지능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인공지능의 도덕적 상황에 대한 이해 및 실수 보완에 관한 문제, 도덕 판단을 내리기 위한 직관적,․분석적 판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주역은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과학적 근거) 겸손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인문학적 수양을 하는데 참고할 만한 책이다. 각자 생각이 다르고 처한 여건이 다른 수만 가지 상황을 수백 가지의 해석을 하기 위하여 일부러 너무 깊게 파고들어 갈 필요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꿈(본질)이 아니라 해몽(가지)하느라 정작 꿈을 꾸지 못할 우려가 있다. 다만 현재의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전자 사주만큼 일반인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주역의 위대성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인간의 상황(상태와 변화)을 구조화시키고 나름 최적의 길을 찾는 모델 (모형)을 만든데 있다.
삼국지가 나이에 따라 달리 보이듯, 주역 역시 한 사이클(환갑) 이상을 살아보니 거창할 일 없어 보인다. 공자께서 마지막 잡은 책이 주역이지만, 살아온 인생 매사에 닥친 순간마다 인간과 자연 등 주변 환경의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상수와 변수의 조화(변화무쌍) 속에서 최적의 길을 찾는 일인데, 주인공인 내가 과한 욕심이 없이 상식적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훤하게 보일 일이다.
주역, 64괘를 인문학적으로 보면 한 괘 한 괘 하나가 곱씹어 볼만한 묘한 인생이다.나가며
관심 가는 구체적인 문제를 어디 갇혀서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본다. 감사하듯이 객관적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동서고금 등 역사적으로 비추어보고, 철학적이고 과학적 시선으로 사유하여 문학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그리고 재미있어야 한다.
글 쓰려는 생각의 시선이 전후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로도 견·시·관(見視觀)을 거쳐 통찰하여야 한다. 수양이 따로 없다. 글을 쓰는 일은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좋은 비결이다. 변화에 대처하는 비결서 인 주역도 시대에 맞추어 인공지능으로 무장하며 진화하여야 한다.
글을 쓰는 일, 즐겁게 임하며 사실과 의견(대안)을 알리고,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임무다. 그 글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진 독자를 설득하는 일 역시 작가의 몫은 아니다.
매일 글쓰기, 제법 큰 스트레스가 수반하는 수행이지만 어떤 물질로도 얻을 수 없는 희열이 대가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스로 썩지 않고 익어가며 발효됨을 느낀다. 내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다. 나이를 먹어가며 이만한 일도 없다. 아니 이 이상의 일은 없다.<한경닷컴 The Lifeist>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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