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과 함께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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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곁에 있는 것은 왜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늘 곁에 있기에 그것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광고에서 채굴한 행복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아니면 그 사람의 작은 결점만 보고 소중한 것을 스스로 팽개쳐버릴 수도 있다.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스스로 박탈하는 격이다. 더 좋은 것을 찾아 멀리 떠나지만 금방 후회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기억의 동물이라 소중한 것 모두를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곁’의 옛말 형태는 겨드랑이를 가리키는 ‘겯’이었다. 처음에는 겨드랑이만 가리키다 차츰 가깝고 친숙한 것을 가리키는 ‘곁’으로 변했다.
‘옆’이 어떤 것의 왼쪽이나 오른쪽을 가리킨다면 ‘곁’은 어떤 것의 가까이나 옆이란 뜻으로 쓰이니, 곁이 옆보다 포괄적인 뜻이다.마음이 지칠 때마다 곁에 있던 행복을 아련히 떠올리며 소중한 것이었다고 후회한다면 때는 이미 늦었다. 스스로 차버렸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예전의 곁으로 돌아온다면, 곁에 있던 사람은 다시 돌아온 다친 마음을 기꺼이 안아줄 것이다.
캐논(Canon) 카메라의 시리즈 광고 ‘만남’ 편(2020)에서는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한 컷의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벨기에의 광고회사 해피니스에서 만든 이 광고에서는 사진작가가 찍은 포옹 장면을 광고에 그대로 활용했다. 작가는 코로나19 때문에 격리됐다가 다시 만난 사람들이 포옹하는 장면을 흑백 사진에 담았다.할머니와 손녀, 늙은 아버지와 아들 내외, 어머니와 딸, 두 친구, 형과 동생이 광고에 등장했다. 인물의 표정을 보면 연기하는 것 같지 않고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서로 만나지 못하다 다시 만나게 된 행복한 순간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으니, 그냥 피사체를 찍지 않고 찍는 사람의 마음까지 사진에 담아낸 것 같다.
모든 광고에는 격하게 포옹하는 장면만 있고 헤드라인을 비롯한 카피가 없다. “첫 번째 포옹(firstHugs)”이란 단어 앞에 해시태그(#)만 달았을 뿐이다.흑백 톤의 배경 때문에 캐논의 빨간색 로고가 더 돋보인다. 벨기에의 사진작가 리브 블랑콰르(Lieve Blancquaert, 1963-)는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에서 해제돼 소중한 사람끼리 다시 만난 순간을 감격스럽게 표현했다.
사진 한 장이 곧바로 인상적인 메시지로 승화된 이 광고들은 소셜 미디어 채널을 비롯해 여러 미디어로 확산됐다. 곁에 있다가 강제로 떠나야했던 사람을 다시 만난 행복감을 포착한 사진 한 장은 그 어떤 카피보다 뛰어난 설득효과를 발휘했다.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준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기다리는 사람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면서 아버지 곁을 떠났다. 모든 재산을 탕진해버린 아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용서를 구한다.
그새 늙어버린 아버지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떠나간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을 축하하려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루카복음 15장).
화가 렘브란트는 이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돌아온 탕자>(1668-1669)라는 그림을 남겼다.
그림에서는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여러 평론가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아버지의 용서와 관용에 대해서만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소중한 것을 찾아 다시 돌아온 아들의 용기에도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소중한 것을 버리고 떠난 자신의 오판이 부끄러워 아예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그래도 돌아오는 것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캐논 광고의 여러 사진들만 봐도 그 잠깐 사이에 지나온 시간들은 사라져버리고, 다시 만난 지금 이 순간의 기쁨과 행복감만 남아있을 뿐이다. 광고를 얼핏 보면 광고가 아닌 사진 작품 같다.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난 기쁨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하니 반갑고 애틋하고 뭉클한 감정이 생생히 묻어난다.
카메라 전문가들은 니콘카메라는 선명한 느낌을 잘 살려내고, 캐논카메라는 따뜻한 색감을 잘 표현한다고 평가하는데, 광고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을 따뜻한 색감으로 구현했으니 캐논카메라의 특성을 제대로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포옹하는 순간의 찰나를 담은 사진일 뿐인데도 마치 한 점의 예술작품 같은 광고를 완성한 셈이다.
다시 만난 행복을 포착한 광고를 보고 있으면 가수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1990)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가사는 이렇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 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은 그 순간부터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아니 보낸 게 아니라 훌훌 털고 가버렸는데도 말이다.떠난 그 사람도 익숙하던 손길과 편하게 기댈 어깨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곁에 있던 것들이 소중한 것이었다고 알게 되면 떠난 사람이 언제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보낸 사람은 지친 마음 아물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결코 잊고 살면 안 된다. 한번 떠났다 되돌아온 사람은 다시는 멀리 떠나지 마시기를. 소중한 건 늘 곁에 있으니까.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시기를.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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