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로"…새 자본시장법 앞두고 女법조인 '귀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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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부터 '자산 2조' 상장사 대상여성 법조인이 대기업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크게 늘었다. 오는 8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이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여성 법조인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 수요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2개 기업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는 여성 법조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특정 성별로 이사회 구성 못해
삼성전기·현대重·카카오뱅크 등
대형로펌 출신 여성 변호사 영입
업계 "원하는 인재 뽑기 힘들어"
2곳 사외이사 맡는 경우도 있어
“법 바뀐다”…늘어나는 女 사외이사
지난달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사외이사 풀에 등록된 여성 법조인의 사외이사 선임 소식이 잇따랐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29일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20기)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삼성전기는 이윤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28기)를,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는 이지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17기)를, 우리금융지주는 송수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39기)를 신임 사외이사로 뽑았다.여성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다수 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LG디스플레이는 강정혜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21기)를, CJ는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27기)를, SK이노베이션은 김태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29기)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여성 사외이사 영입 붐이 일고 있는 건 개정 자본시장법 때문이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자본시장법은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사회를 전원 남성으로만 구성한 기업들은 8월 이전까지 반드시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 사외이사의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2020년 3분기 기준 7.3%에서 올해 18.1%로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이들 기업 중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선임한 기업도 같은 기간 51곳에서 125곳으로 대폭 늘었다.
‘모시기 경쟁’에 인재 품귀 현상도
기업들이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 강조되면서 기업 관련 법규 준수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법조인 사외이사들의 인기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리더스인덱스가 2022년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 169개 중 120개 기업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는 104명이다. 이들 중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조 관련 인사는 28명(26.9%)이다.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업계에선 여성 법조인 품귀 현상을 호소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인력 풀에서 기업이 원하는 경력을 갖춘 여성 법조인은 극히 적다”며 “조건이 맞으면 이미 다른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영입한 경우가 많아 마땅한 인재를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 명이 2개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중복해 맡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혜리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23기)는 삼성증권과 롯데하이마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손영은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41기)도 연이비엔티와 동양물산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이 같은 인재난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은 사외이사 재선임을 6년까지만 허용하고 있어 이전부터 여성 이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은 새로운 인물을 찾아 선임해야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성 이사 의무제와 함께 더 많은 여성 사외이사 인재를 육성하고 교육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