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로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예산…세금횡령 면책권 준 셈"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 인터뷰

특활비만 보면 한국은 봉건 국가
헌법소원 해서라도 비용 밝히겠다
정부 특수활동비 공개 캠페인으로 ‘대통령 부인 옷값 논란’에 불을 붙인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 회장(왼쪽)이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특수활동비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최근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5년간 옷값과 액세서리 비용에 집중되고 있다. 본질은 특활비가 정당하게 쓰였는지 여부다. 쏟아지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옷 구입에 특활비가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 옷값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한국납세자연맹이다. 작은 비정부기구(NGO) 한 곳이 청와대 특활비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고, 3년 만에 승소를 이끌어냈다. 21년째 정부 보조금 없이 회원 성금만으로 시민단체를 이끌어온 김선택 회장을 만나 논란의 핵심과 구조적 문제점을 들어봤다.

▷옷값과 특활비를 둘러싼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나.“현금으로 지급한 한복 구입비 700만원, 신발 비용 300만원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사비라고 했지만 의혹이 남는다. 문제의 핵심은 특활비가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가능하면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하지만, 구속력 없는 권고다. 대통령 부인 옷값이 과연 개인 통장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지급된 것인지 수사로 밝히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영수증을 첨부토록 하면 바로 해결될 문제였다. 이런 예산 제도는 부패 방지를 포기한 것이다. 세금 횡령의 면책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관행처럼 사용해온 것인데, 갑자기 없앨 수 있겠나.

“이번에만 문제가 된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총무비서관이 특활비 3억원을 빼돌렸다가 문제가 됐고, 이명박 정부 때도 국가정보원 돈이 그렇게 활용됐다. 박근혜 정부 때도 이게 문제였다.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관련자에 대한 비판·공격보다 문제가 된 제도를 봐야 한다. 비공개로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돈이라면 누구라도 쓸 것이고, 비서진이 사용을 부추길 수도 있다. 지금 청와대도 이런 구조적 함정에 빠진 측면이 있다.”▷2015년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예고된 수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우리가 성명서를 통해 특활비 축소를 요구했을 때 선진국처럼 폐지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 퇴임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에 있는 만큼, 새 정부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이 나서 없애길 바란다. 윤 당선인 본인에게도 특활비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검찰에 오래 근무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수 있는 요인이다. 검찰 특활비도 만만찮은데, 그게 실상은 ‘조직관리 비용’이다. 국가 안보와는 관계가 없다. 그나마 필요성이 인정되는 유일한 기관은 국정원이다.”

▷특활비 사전 심의나 집행 후 감사는 어떻게 되나.“그간 국민은 세금을 내기만 했지 제대로 쓰였는지, 낭비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깜깜이 예산 특활비 문제가 터졌다. 특활비만 보면 한국은 봉건신분사회 국가다.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120만 명의 공무원과 공무원 노조 등 어디서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영수증 없이 혈세가 쓰였는데 비판을 못 한다.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다. 시민단체들도 입을 닫아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특별히 더 나빠진 것이 있나.

“정보공개도 안 된 채 깜깜이 지출을 계속해온 게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불투명성을 비판해온 문 정부도 스스로 내세워온 ‘투명한 정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정보공개를 처음 요구했을 때 청와대 반응은 어떠했나. 지금의 해명은 어떻게 보나.

“현 청와대는 처음부터 국가 안보 사항이어서 공개를 못 한다고 했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 같은 입장이었다. 대통령 부인 옷값에 대한 질의에서는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면서 ‘행사비 중 일부가 여사 몫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했다. 명백히 옷값 지출이 있었던 것이다. 재판에서도 계속 지연 전략을 썼고, 지금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덮으려 하고 있다. 납세자 권리를 인정하기는커녕 비공개를 당연히 여기며,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없다. 공직 특유의 특권의식을 절감했다. 세금을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활비 문제를 제기한 뒤 겪은 어려움이 있나.

“2015년부터 전 부처를 상대로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를 했으나, 한 곳도 응하지 않았다. 여론 설득전을 펴오다 2018년 6월 힘겹게 정보공개 소송을 냈고, 한참 뒤늦게 3년 만에야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온 우리 연맹에 대한 오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특정인 흠집 내기나 개인의 형사적 책임이 아니다. 잘못된 예산 제도의 개선이다.”

▷향후 납세자연맹의 방침과 계획은.“조만간 대통령 기록물로 묻혀가지 않도록 헌법재판소에 가처분신청으로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 청와대가 정보공개 판결에 따르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침해다. 특활비만 보더라도 진영 논리에 빠진 우리 정치의 문제점이 심각하다. 여야가 바뀌면 특활비에 대한 입장도 그대로 바뀐다. 옷값 문제가 진영 갈등을 넘어 시스템 구조 개혁으로 가야 한다. 세상은 흑백논리처럼 단순한 게 아니지 않은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