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제주 영리병원 논란 재점화…재추진될까?

녹지국제병원 측 연이어 승소…제주도 "개설 조건 부적합…항소 검토"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올 초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데 이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제주도의 행위가 위법하다는 1심 법원의 판결이 5일 나왔다.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모든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번 판결로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 여부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 현재까지 녹지제주 완승
국내 1호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소송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1만7천679㎡ 규모의 녹지국제병원을 짓고 제주도에 개원 허가 신청서를 냈다.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자 제주도는 이듬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2018년 10월 4일 6개월간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대답한 비율이 58.9%로, 허가 의견보다 20% 포인트 높게 나타나 결국 개설 불허 방향으로 도의 방침이 정해졌다.

그러나 그해 12월 5일 제주도는 불허할 경우 제주에 미칠 대내외적인 파장을 우려해 외국인 전용 진료 조건부로 국내 첫 영리병원을 승인했다.

즉 내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도록 조건부 허가를 준 것이다.
녹지제주는 이에 반발, 개원 대신 2019년 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외국인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90일간 개원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도에 요청했다.

제주도는 개원 시한 연장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녹지제주가 3개월이 지나도록 병원 문을 열지 않자 의료법 규정을 들어 2019년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개설 허가가 취소되자 이어 같은 해 5월 도를 상대로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영리병원을 둘러싼 소송전이 시작된 것이다.

결과는 현재까지 녹지제주의 완승이다.

우선 대법원은 지난 1월 13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제주도의 개설 허가 취소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어 이날 외국인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서도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의 1심 판단이 나왔다.

제주도 측은 "녹지제주 측이 병원 지분을 넘긴 상태라 각하 결정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당혹스럽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 내국인 진료 여부 놓고 소송 왜?
영리병원은 간단히 말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병원을 말한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미화 500만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을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만 허용하고 있다.

영리병원은 이름 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영리병원과 구분된다.

비영리병원은 병원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의료시설 확충과 인건비, 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목적에 맞도록 재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은 모두 영리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영업 이익의 종착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리병원이 '외국인 투자병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투자개방형 병원','영리 의료법인'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혼용되는 것은 이와 같은 설립·운용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내국인도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모든 의료기관은 어떤 환자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어 해외 의료관광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영리병원도 원칙적으로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내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전용 진료 조건부로 국내 첫 영리병원을 승인했다.

제주에서 영리병원 소송이 제기된 배경이다.

법원의 일차적 판단은 "제주특별법의 문언 및 입법 연혁에 비추어 보면, 내국인 진료 허용을 전제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 사건 허가 조건은 제주특별법상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제도의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영리병원 빗장 풀릴까?
국내 첫 영리병원이 제주에 들어설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난 2월 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 제한'이란 조건이 없어지면 영리병원을 재추진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도가 영리병원 추진 여부에 대한 향후 계획을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한 녹지제주 측의 회신이다.

다만 녹지제주는 영리병원 재추진 의사를 내비쳤을 뿐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재개할지에 대해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녹지제주의 영리병원 재추진 의사에 대해 일종의 거짓 액션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현재 진행 중인 내국인 진료 제한 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실제 의사와 다르게 추진 의사가 있다는 식의 의도만 내비친 것이라는 의견이다.
녹지제주는 이미 지난 1월 영리병원 개원을 위해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조성한 녹지국제병원 건물의 소유권을 국내 법인인 디아나서울에 넘겼기 때문이다.

디아나서울은 해당 건물에 비영리 병원을 유치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제주도가 최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실사를 벌인 결과도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제주도는 지난달 28일 영리병원으로 허가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실사를 벌인 결과 내부에 의료 장비가 전혀 없고 의료 인력도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최근 밝혔다.

또 녹지제주가 최근 녹지국제병원 건물과 부지를 국내 법인에 매각함에 따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른 외국인 투자 비율(100분의 50 이상) 요건에도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리병원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영리병원 반대 운동을 벌여온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이날 "앞으로 국내 모든 영리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그러면서 "다만, 이미 녹지제주 측이 병원 건물과 토지 소유권을 매각한 상태로 재판과 무관하게 병원 개설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영리병원을 반대 운동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나머지 재판 결과와 녹지제주의 영리병원 재추진 의사 여부에 달려있다. 제주도가 항소하게 되면 대법원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