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스톰 닥치는데 투자는 무슨"…兆단위 투자 LG이노텍이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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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기업 설비투자 반토막“글로벌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LG 사업보고서) “유가·환율 변동성 확대, 인플레이션, 미국 금리 인상 등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 현실화 우려가 커졌다.”(현대코퍼레이션 사업보고서)
투자공시 40%는 부동산 매입
우크라 사태로 불확실성 고조
제조업 체감경기 13개월來 최저
사방이 악재…투자 취소 잇달아
버티기 힘들어 투자는 언감생심
석유·금속 등 원자재값 고공행진
실적쇼크 우려에 "비상체제 돌입"
금리 치솟아 자금조당도 힘들어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되는 등 퍼펙트 스톰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기업들 사이에 확산하고 있다. 사방에 널린 악재에 올해 1분기 기업 설비투자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수준이 났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규제를 완화해주는 등 투자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 체감심리도 최악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시설투자 및 유형자산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모두 54곳으로 투자금액은 3조7846억원에 달했다. 작년 1분기 36개사가 공시한 투자금액(7조9499억원)과 비교해 52.3%(4조1653억원)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분기(5조2506억원) 수준에도 밑돈다.올해 1분기에는 LG이노텍이 광학솔루션(카메라 모듈) 등에 1조4691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 공시 기업 기준으로는 유일한 ‘조(兆) 단위’ 투자였다. 두산그룹에 인수된 반도체 공정 업체 테스나가 반도체 테스트 장비를 1004억원에 매입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투자였다. 반면 정보기술(IT) 인프라 업체인 가비아를 비롯한 기업 23곳이 공시한 7722억원은 설비투자가 아닌, 단순 부동산 매입 거래였다.
이처럼 기업 설비투자가 쪼그라드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설비투자는 전달과 비교해 5.7% 줄었다. 2월 설비투자 증가율은 2020년 2월 후 2년 만에 가장 낮았다.설비투자를 주도하는 제조업체들의 체감경기도 싸늘하게 식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지난달 84를 기록해 전달보다 7포인트나 빠졌다. 지난해 2월(82) 후 최저치다. BSI는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기업의 판단과 전망을 조사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치솟는 금리에 투자심리 위축
치솟는 원자재 가격과 고공행진하는 금리가 기업 투자심리를 옥죄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 2월 수입물가지수(2015년 100 기준)는 137.34로 작년 2월보다 29.4% 상승하는 등 12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석탄·석유제품(51.7%), 1차 금속제품(34.4%), 화학제품(25.3%) 등이 두드러지게 뛰었다.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한 뒤 수출하는 기업들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실적 충격’ 우려도 커졌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일 국내 118개 상장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44조214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초(47조4200억원)와 비교해 3조2059억원(6.8%) 줄었다.실적 전망마저 어두운 상황이다 보니 설비투자는 ‘언감생심’이다. 한 석유화학 업체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뛰면서 회사 분위기가 올 들어 크게 나빠졌다”며 “내부적으로 비용 감축을 비롯한 계획을 점검하는 등 비상상황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치솟는 금리도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4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53%포인트 오른 연 2.837%에 마감했다. 2014년 6월 9일(2.840%) 후 최고치다. 대표 시장금리인 국고채 금리가 뜀박질하면서 기업 대출·회사채 금리도 동반 상승 중이다. 전날 3년 만기 ‘AA-’급 무보증 회사채 금리는 연 3.499%로 2012년 7월 19일(연 3.50%)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가 뛰면서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미루는 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이라며 “중견·중소기업들이 비교적 저금리로 설비투자용 차입금을 조달할 수 있게 돕는 금융 지원정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