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퇴짜·빌 게이츠도 10년 걸려…'오거스타 회원'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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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지위·도덕성 등 깐깐 심사마스터스 토너먼트 공식 연습일 이틀째인 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의 클럽하우스 앞. 큼지막한 느티나무 사이로 패트런(갤러리)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무리의 중심에는 예외 없이 그린 재킷(사진)을 입은 사람이 서 있다. ‘골프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오거스타내셔널 회원들이다. 마스터스는 일반인이 세계 최고 골퍼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산업 등 각 분야의 ‘거물’인 오거스타 회원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각계 거물 300명만 회원 가입
"백만弗 토크 나누는 사교의 장"
미국 언론들은 오거스타 회원의 상징인 그린 재킷의 가치에 대해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평가한다. 오거스타 회원은 회비를 많이 낸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어서다. 오거스타내셔널은 철저하게 심사제로 회원을 뽑는다. 회원이 마음대로 회원권을 팔거나 양도할 수도 없다. 좀처럼 회원 수도 늘리지 않는다. 기존 회원이 사망하면 오거스타내셔널이 회원권을 회수한다.세계적 부호 빌 게이츠가 오거스타 그린 재킷을 입기 위해 10년 넘게 기다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과거 입회를 희망했지만 심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거스타내셔널이 사회적 지위와 도덕성, 재정 상태 등을 엄격하게 심사한 뒤 새로 선정한 회원 후보자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들은 오거스타 회원 수를 300명 정도로 추산한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오거스타내셔널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생산원가가 250달러(약 30만원)에 불과한 오거스타표 그린 재킷은 마스터스 기간 대회장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자유이용권’ 역할을 한다. 암표값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생산원가의 수십 배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물론 초록색 재킷을 입었다고 모두 ‘프리패스’인 건 아니다. 오거스타내셔널이 회원들에게 준 비표를 착용해야 한다. 그린 재킷에 이 비표를 걸면 대회 기간 클럽하우스를 포함해 거의 모든 구역을 드나들 수 있다.각 분야의 거물들이지만, 이들이 대회장에서 비즈니스 대화를 나누는 걸 목격하는 건 쉽지 않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그린 재킷을 입은 한 대학교수 역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과 골프 얘기만 주고받았다. 이런 일화도 있다. 과거 마스터스 대회 때 한 경기위원이 클럽하우스 식당 바로 뒷자리에 앉은 클라우드 닐슨 코카콜라 회장과 브라이언 모이니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대표를 발견했다. 좋은 투자정보를 얻을 생각에 두 거물이 주고받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지만 소득은 없었다. A선수가 12번 홀에서 온그린을 할지를 놓고 내기하는 얘기뿐이어서다.
20년 넘게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취재한 미국 기자는 “재계 거물들의 ‘백만달러 토크’는 클럽하우스가 아닌, 코스 안에서 은밀하게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회원들은 울창한 나무가 방음벽 역할을 하는 코스에서만 비즈니스를 얘기한다는 뜻이다.
오거스타(조지아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