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는 머스크보다 강하다"…장기 금리 폭등, 가팔라진 커브

5일(미 동부시간) 뉴욕 채권 시장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전날 밤 열린 아시아 채권 시장에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다시 2.4%를 넘었습니다. 3월 결산을 마친 일본 금융사들은 매년 4월 초 미 국채를 사들입니다. 그런데 올해 좀 다르다는 말이 나옵니다. 월가 관계자는 "엔화 약세 탓인지 예상보다 일본 투자자의 미 국채 매수가 덜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로 인해 금리가 올라간 것입니다.

이어진 유럽 채권 시장에선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국채 금리가 치솟았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번 주 일요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극우주의자 장 마르 르펜의 지지율이 크게 올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위협하자 '팔자' 주문이 나왔습니다. 이는 미국 국채 금리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뉴욕 채권 시장이 열리던 아침 무렵 10년물 금리는 연 2.45%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전 10시, 미 중앙은행(Fed)의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가 발언에 나섰습니다. 브레이너드 총재는 원래 비둘기파입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의장일 때는 오른팔로 불렸습니다.
그랬던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는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았던 1970년대 Fed 의장을 지낸 폴 볼커와 아서 번스를 소환하며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볼커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궁극적으로 고용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라는 것입니다. 또 "번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번스는 1970~1978년 의장을 지내면서 인플레이션을 내버려 뒀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후임자(1979~1987)인 볼커는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 이런 물가를 때려잡았죠.
브레이너드가 그런 인물을 언급하자 투자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브레이너드는 연설 후반부 '매의 발톱'을 드러냈습니다. ① 5월부터 '빠른' 자산 감축+일련의 금리 인상

그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5월 회의를 시작으로 '빠른 속도로' 대차대조표 축소에 착수하고 일련의 금리 인상을 통해 체계적으로 긴축 통화정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② 자산 감축, 더 많이 더 빨리"경제 회복이 이전 사이클보다 훨씬 강력하고 빨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전 회복보다 훨씬 더 빠르게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면서 "2017~2019년 최대한도에 비해 훨씬 더 큰 한도와 훨씬 짧은 기간에 축소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Fed는 2017년 첫 자산 감축을 시작했으며 매월 감축 한도는 100억 달러로 시작해 500억 달러까지 높였었습니다.
③ 올해 말 "중립"

"금리 인상과 대차대조표 축소를 합친 영향으로 올해 말 Fed의 정책이 보다 중립적인 위치로 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립적 위치란, Fed의 통화정책이 더 부양적이거나, 긴축적이지 않은 상황을 뜻합니다. ④ 물가 더 오를 위험, 더 강력 대응

"현재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더 상승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라면서 "인플레이션 지표와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더 강력한 긴축 조치가 정당함을 나타내면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중국의 봉쇄 조치는 공급망 병목 현상을 확대하고, 성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는 요인으로는 해외 성장 둔화,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 감소, 노동자 공급 증가, 높은 차입 비용으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을 언급했습니다.

브레이너드 지명자의 발언이 나오자 금리는 폭등했습니다. 공격적으로 긴축한다니 당연합니다. 10년물 금리는 순식간에 15bp(1bp=0.01%포인트)나 폭등해 연 2.560%까지 뛰었습니다. 2019년 3월 이후 3년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또 2년물 금리는 9.8bp 오른 2.530%에 거래됐습니다. 전반적으로 장기 금리가 폭등하고, 단기 금리는 그보다는 덜 올랐습니다.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가 언급한 자산 감축, 즉 양적 긴축(QT)은 장기 금리를 높이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장단기 금리 차이(스프레드)가 벌어지면서 수익률 곡선 역전 현상은 해소됐습니다. 이게 Fed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브레이너드가 운을 띄운 이런 자산 감축의 세부 내용은 6일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일부 나올 것으로 관측됩니다. 월가에서는 월 상한이 800억~1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월가의 한 채권 트레이더는 "브레이너드의 발언 내용은 사실 어느 정도 시장에서 짐작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금리가 뛴 건 그동안 채권 가격이 좀 올라서 팔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핑계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월가의 고위 관계자는 "브레이너드가 내일 공개되는 QT 내용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미리 경고한 것일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습니다.

금리 상승에는 이날 나온 경제지표도 한몫했습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지난 3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발표했는데요. 58.3으로 전월(56.5)보다 1.8포인트 높아졌습니다. 이는 월가 예상치(58.3)에 부합하는 수준입니다. 서비스업 PMI는 오미크론 확산 등의 영향으로 지난 3개월 연속 둔화했고, 지난달 확산세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에 확장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리고 역시 시장 기대대로 소폭 개선됐습니다. 세부 지수들도 좋았습니다. 기업활동 지수는 2월 55.1→3월 55.5, 신규 수주 56.1→60.1, 고용지수는 48.5→54.0으로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월가가 주목한 게 따로 있었습니다. 가격지수가 83.1→83.8로 또다시 상승한 것입니다. 이는 PMI 조사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준입니다. 서비스업체들이 부담하는 비용 부담이 치솟았다는 얘기입니다. ISM의 앤서니 니베스 회장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감소하고 공중 보건 규제가 줄면서 노동력 부족이 약간 완화됐다. 하지만 연료, 화학물질과 같은 재료 비용에 영향을 미친 지정학적 우려가 기업에 불확실성을 일으켰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음식료 업체는 “공급망 혼란 문제는 지난달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이 감소하면서 고용은 개선됐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한 농업 업체는 "곡물과 비료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가까워져 구매가 감소했다"라고 털어놓았고, 한 건설 업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가격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에너지 비용이 치솟고 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지난주 발표됐던 ISM의 제조업 PMI에서도 가격지수가 75.6→87.1로 올랐는데요. 산업 전역에서 비용 압력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오전 9시 30분, 나스닥은 1%가량 하락하면서 출발했지만, S&P500 지수와 다우 지수는 소폭 내림세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10시 브레이너드 발언 이후 급락했고 이후에도 내림세는 확대되었습니다. 결국, 다우는 0.8%, S&P500 지수는 1.26% 하락했고 나스닥은 2.26%나 떨어졌습니다.
어제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빅테크를 포함한 기술주 등 성장주들은 모두 크게 하락했습니다. 엔비디아는 5.2%, 퀄컴은 5.4%, AMD는 3.4% 각각 하락했고 주요 빅테크도 1∼2%가량 내렸습니다. 아크이노베이션펀드는 5.6%나 떨어졌습니다. 반면 유틸리티와 헬스케어, 필수소비재, 부동산 등 경기방어주들이 시장을 이끌었습니다. 유틸리티 업종 지수는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습니다. 경기 사이클 후기에 빛을 발하는 업종들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오늘 우리가 배운 게 있다면 Fed가 머스크보다 강하다는 것"이라며 "머스크 뒤에는 투기적인 개인들이 있지만, Fed 뒤에는 '리얼 머니'들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리얼 머니'란 월가의 기관 투자자들이 움직이는 돈을 말합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전략가는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슈퍼 7'(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 메타)이라고 불리는 시가총액 상위 일부 기술주들의 반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난 2년간은 경제가 폐쇄되고 이들이 주도하는 영역에서 살아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가 폭등은 강력한 정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있고 팬데믹이 우리 뒤에 있기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극명하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문제는 시장에서 가장 투기적이고 품질이 낮은 고평가 기술주, 밈주식, 스펙(SPAC), 공매도가 많은 주식이 주요 지수 상승 폭을 훨씬 능가했다는 것"이라면서 "이는 저품질 리더십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기보다 평균 회귀 트레이드처럼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즉 너무 떨어진 만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돌아오는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손더스 전략가는 "역사적으로 이익을 못 내는 기업 등 저품질 주식은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 때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 지금 환경에서 안전한 베팅이 아니다. 다시 이익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곧 1분기 어닝시즌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달러인덱스도 올라 100에 육박했습니다. 공격적 긴축 움직임이 반영된 것이지요. 도이치뱅크는 이날 Fed의 강력한 긴축으로 내년 4분기부터 미국의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월가 은행 가운데 침체를 공식화한 곳은 도이치뱅크가 처음입니다. 도이치뱅크는 "내년 미국의 경기 침체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현재 월가 컨센서스에서 벗어난다"라면서도 "(현재 컨센서스는)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아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도이치뱅크가 침체를 예상하는 건 '얌전한' 수준의 긴축으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이 부분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매튜 루제티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더 연착륙을 달성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물가 안정은 수요를 의미 있게 위축시키는 규제적 통화정책을 통해서만 달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제 분명해졌다. 이런 적극적 긴축 정책은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도이치뱅크는 Fed가 향후 세 차례 FOMC에서 각각 50bp씩 금리를 올리는 등 공격적 긴축에 나서 내년 중반까지 기준금리가 3.5%를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9조 달러에 달하는 대차대조표는 내년 연말까지 2조 달러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기보다는 2023년 4분기, 2024년 1분기 두 개 분기에 걸쳐 성장이 잠깐 위축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도이치뱅크는 이런 침체로 인해 Fed는 2024년 말이면 물가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루제티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이 바닥을 친 뒤 서서히 오르면서 인플레이션은 계속 완화될 것이고, 2025년에는 Fed의 목표인 2%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3월 FOMC 회의록은 내일 오후 2시, 한국 시각 7일 새벽 3시에 공개됩니다. 과연 브레이너드 지명자의 말은 맞을까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