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뉴 스페이스' 벌써 물 건너갔나
입력
수정
지면A30
우주 산업 선점하려는 부처 경쟁‘뉴 스페이스(new space).’ 군과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우주 개발 트렌드다. 2002년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세계를 선도하는 발사체 기업으로 올라선 스페이스X가 이 트렌드의 시작점이다. 통신·관측위성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뉴 스페이스 덕이다. 저비용으로 수시 발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올해부터 10년간 170여 개의 위성을 쏠 예정이다.
기업은 실종되고 조직분할 논의만
이해성 중소기업부 기자
그러나 최근 정부 안팎의 움직임은 뉴 스페이스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과학계 우려가 크다. 국방부는 지난달 30일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에서 고체 추진 우주발사체 시험 장면을 예고 없이 전격 공개했다.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정권 교체기에 일어난 어리석은 처사이자, 정상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대형사고”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주발사체는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그 어떤 국가의 국방부도 이런 식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ADD에서 근무했던 한 과학계 인사도 “국방부가 발사체를 주도하기 시작하면 민간의 입지가 굉장히 좁아진다”고 우려했다. 기술 수출도 당연히 어려워진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우주개발 전담 기구 설립 논의도 산으로 가고 있다. 뉴 스페이스 진흥 계획은 온데간데없고 경남 사천·창원이냐, 대전이냐 등 입지를 둘러싼 지역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전담 기구 명칭과 조직 구성도 논란이다. 항공 관련 조직을 보유한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항공우주청’ 설립을 지지하고 있다.
과학계 의견은 다르다. 뉴 스페이스 진흥을 위해선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 전담 기구인 ‘우주처(청)’로 발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장 엔지니어들이 주축인 항우연 노동조합은 최근 윤 당선인을 향해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미래 우주산업을 둘러싼 부처 이기주의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특정 지역 또는 부처의 우주청이 아니라 전 부처를 총괄할 민군 통합 우주처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에 부정적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조만간 각 부처 장관 후보자와 함께 정부 조직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로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 정보통신기술(ICT), 우주개발 부문으로 분할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직 개편보다 중요한 것은 실종된 뉴 스페이스 논의를 복구하는 일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현장 엔지니어들과 미국 캘리포니아·텍사스, 태평양 한가운데 섬 등에서 십수 년간 동고동락하며 스페이스X를 성장시켰다. 이런 기업가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정부 형태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