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양자정보기술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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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에 대한 높은 관심은 미국 벨 연구소의 응용수학자 피터 쇼어가 소인수분해 양자 알고리즘을 1994년에 발표하면서 불붙었다. 187처럼 세 자릿수라면 11 곱하기 17로 금방 소인수분해할 수 있지만, 788131처럼 여섯 자리만 돼도 소인수분해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2000자리 수는 최신 디지털컴퓨터 10의 80제곱대를 10의 18제곱 초 동안 돌려도 소인수분해할 수 없다. 10의 80제곱은 우주에 있는 핵입자의 개수에 해당하고, 10의 18제곱 초는 우주 나이와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계산은 자릿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문제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계산 시간이 지수함수적으로 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기존의 디지털컴퓨터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양자컴퓨터를 쓰면 불과 몇 초 내지 몇 분 안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IBM, 구글, 이온큐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이 양자컴퓨터 사업에 뛰어들고 있고, 양자컴퓨터 해커톤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대학생도 수백 명을 넘어서고 있다.인터넷 등에 널리 쓰이는 암호 방식은 큰 수의 소인수분해처럼 어려운 문제를 풀면 해독되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통신 보안에 큰 위협이 된다. IBM의 베넷과 몬트리올대의 브라사드가 1984년 제안한 양자암호는 양자컴퓨터를 포함해 어떤 종류의 컴퓨터로도 공략이 불가능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양자물리학과 통신 보안의 관계를 ‘병 주고 약 주는’ 관계라고 부른다. 무쯔(墨子)호 같은 양자암호 전용 인공위성까지 보유한 중국은 양자암호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양자기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양자물리학은 익숙함이 필요
이샴이라는 물리학자는 칼 융의 ‘심리학 전집’을 모든 이론물리학자의 필독서로 추천했다. 양자물리학을 동원해 우주를 이해하는 데 그만큼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양자정보기술을 위해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중첩, 측정, 얽힘 등과 같은 개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진짜 어려운 양자물리학은 엄청나게 복잡한 미적분 수학을 사용하는 고체물리학, 입자물리학, 초끈이론 등이고 이는 물리학 전공자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에 비해 양자정보기술의 양자물리학에는 행렬식과 복소수에 관한 초보 수준의 수학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소통을 위한 전 세계 공통언어가 수학과 영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수학은 그야말로 기본이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인공지능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장부 정리를 하는 엑셀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행렬 개념이 들어간다. 가로세로 2차원 좌표계와 삼각함수는 바로 실수와 허수가 복합된 복소수로 연결된다.양자물리학이라는 핵심을 양자정보기술로 포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소부장’이라고 하는 소재, 부품, 장비 등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IBM과 구글에서 개발하는 초전도 양자컴퓨터와 이온큐의 이온덫 양자컴퓨터에는 초저온, 초고진공 등의 기술이 쓰인다. 양자정보기술의 미래는 불확실성도 높지만 기대되는 성과도 높다. 기본적인 양자물리학과 수학 교육으로 사람들을 키우고 기존의 소부장 기술 역량을 고도화하면서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차분히 실력을 쌓아나갈 때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