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가 되겠냐 했는데 이젠 금맥"…롯데·GS·신세계도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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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성공에 자극받아국내 대기업들이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서두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기존 주력 사업의 성장판이 닫혀 가는 상황에서 바이오만 한 성장 산업을 찾기 어렵다는 게 첫 번째다.이런 가운데 삼성과 SK가 보여주는 성공 사례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바이오에 뛰어들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백신 사업에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는 “유망 바이오벤처를 소개해 달라는 대기업의 요청이 줄을 잇는다”고 했다.
미래사업으로 잇따라 채택
CJ·이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제약·헬스케어로 영역 확장
바이오에서 기회 찾는 굴뚝기업들
석유화학, 정유, 조선 등 ‘굴뚝산업’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 업종이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 경제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정유·석유화학은 사양 산업이 됐다”며 “끝이 보이는 ‘시한부 사업’”이라고 했다.반면 바이오산업의 전망은 밝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산업은 2027년까지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 사업 비중이 큰 GS그룹이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GS는 최근 비상장 바이오벤처 바이오오케스트라에 6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1위 보툴리눔 톡신 업체 휴젤에도 3000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에 올랐다.롯데그룹도 바이오 투자처를 물색 중이다. 지분 투자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대상인 바이오벤처들과 접촉하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헬스케어를 신설해 그룹 사업 전략을 총괄하는 이훈기 부사장을 대표에 앉혔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미 투자 대상으로 수십여 곳을 추려 놓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화그룹 역시 바이오 사업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화는 2000년대 초반 바이오에 뛰어들었다가 쓴맛을 보고 접었다. 그룹 차원에선 바이오 사업 재진출에 선을 긋고 있지만 한화임팩트가 최근 미국 유전자 치료제 개발 회사에 투자했다.
유통·IT 기업들도 ‘눈독’
CJ그룹은 바이오·제약 사업에 다시 진출했다.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 매각으로 손을 뗀 지 5년여 만이다. CJ는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면역항암제와 염증성 장질환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을 인수했다. 3년 내 신약 후보물질 10개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신세계그룹 계열인 이마트는 또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바이오벤처 고바이오랩에 투자했다. 고바이오랩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시장은 사실상 포화 상태”라며 “기존 사업을 확장시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을 찾고 있다”고 했다.정보기술(IT)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건강·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는 나군호 세브란스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를, 카카오는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사업 수장으로 끌어들였다.
삼성·SK 효과 ‘톡톡’
국내 대기업이 바이오·헬스케어 ‘러시’ 현상을 보이는 데는 삼성과 SK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삼성이 2008년 바이오를 ‘신수종 사업’으로 꼽았을 때만 해도 코웃음 치는 듯한 시선이 적지 않았다. 제약·바이오산업은 전통적으로 미국·유럽의 선진국 중심으로 형성돼왔기 때문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바이오 사업 진출을 선언했을 때만 해도 ‘되겠냐’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되네’로 바뀌었다”고 했다.삼성의 CMO와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이미 본궤도에 올라섰다. 설립 11년 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CMO 세계 1위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1조5680억원, 영업이익 5373억원의 실적을 냈다. 이익률은 34.2%에 이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시밀러 제품 5개를 앞세워 매출 8470억원, 영업이익 1927억원을 거둬들였다.SK는 신약(SK바이오팜)과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코로나 백신 위탁생산으로 지난해 9290억원의 매출을 올려 1년 만에 다섯 배 성장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