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마신다…역사를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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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에 수천만원 '초프리미엄 와인'와인 애호가에게 새 와인을 맛보는 순간만큼 설레는 때가 있을까. 와인은 포도 품종과 재배지(샤토), 연도(빈티지) 등 무수한 변수의 조합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즐거움을 탐구하는 그들에게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병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와인들도 순식간에 동 나기 일쑤다.
인간의 손길 줄인 '특급 포도'로 생산
시시각각 맛이 바뀌는 '마법의 와인'
엘리자베스·케네디 가문이 즐겨 마시는
수확기간 50년+숙성 30년 담긴 와인도
누군가에겐 술이 아니라 ‘문화재’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이런 와인들은 지극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생산된다. 포도나무는 수 세기 전부터 쌓인 토양에서 자란다. 열매가 땅의 기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농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가지치기하더라도 옛날 방식 그대로…. 초(超)프리미엄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역사’를 들이켜는 것일지도 모른다. 와인 애호가들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와인이 있다.‘도멘 드라 로마네 콩티 그랑 크뤼’. ‘로마네 콩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로마네 콩티는 피노누아 포도밭이 몰려 있는 프랑스 본 로마네 마을의 특급 밭 이름이기도 하다. 도멘 로마네 콩티(DRC)라는 와이너리가 이곳에서 단독으로 생산한다. 한 병 가격이 3000만원으로 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 하지만 한 해에 단 6000병만 생산돼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다. 국가별·수입사별로 할당량이 정해져 있다.
로마네 콩티는 철저한 품질관리로 유명하다. 자연을 존중하며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DRC의 방침이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수확도 최소화한다. 콩티의 포도나무는 다른 포도나무보다 크기가 작고 한 그루에서 열리는 포도송이도 더 적다. 보통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와인 한 병이 생산되는데, 로마네 콩티는 세 그루의 포도나무에서 한 병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가지에 열린 포도의 일부를 잘라내 소수의 열매에 영양분이 집중되도록 하는 그린 하베스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로마네 콩티 포도밭에는 1584년 피노누아가 심어졌다. 1945년까지 같은 혈통의 포도나무로 양조했다고 한다. 16세기의 포도가 20세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화학비료나 살충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점성술과 천문학을 적용한 이 와이너리만의 일정에 따라 재배한다. 수확할 때도 반드시 사람의 손으로만 포도를 딴다. 로마네 콩티를 맛본 사람들은 “시시각각 맛이 바뀐다”고 입을 모은다. 맛과 향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수하다. 투명한 루비색,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 달콤하고 풍부한 향 덕분에 ‘마법과도 같은 와인’이라고도 불린다.부르고뉴에 로마네 콩티가 있다면 보르도에는 ‘샤토 페트뤼스’가 있다. 1947년 영국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공의 결혼식에 소개된 뒤 1953년 여왕의 대관식에도 등장해 유명해졌다. 미국에서는 ‘정치 명문’인 케네디 가문이 자주 마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케네디 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샤토 페트뤼스는 보르도의 포므롤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서 수확한 메를로로만 만들어진다. 보통 보르도의 포도밭은 평지에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바람이 잘 통하고 물이 잘 빠지기 때문에 땅의 형질이 독특하다. 페트뤼스의 트뤼프 향, 흙내음, 타르 향은 이런 독특한 토양에서 나왔다. 메를로 한 품종으로만 만들었는데도 풀보디의 중후한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의 포도나무는 대부분 50년 정도 자란 오래된 나무다. 70년이 넘으면 다시 심는다. 페트뤼스는 숙성기간이 30년은 돼야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한 해 생산량은 5000병 미만. 한 병에 1000만원이 넘는다.
‘부르고뉴 와인의 살아있는 전설’ 르루아 여사가 생산하는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 크뤼’는 도멘 르루아가 소유한 밭에서 자란 가장 좋은 품질의 뮈지니 포도를 사용한다. 한 병에 2000만원이다.비료는 유기 비료만, 가지치기는 고대에서 전해오는 방법에 따라 특정 별자리일 때만 진행한다. 와인을 병에 넣을 때는 병 안에 와인이 가득 찬 상태로 코르크를 막는다. 닫는 순간 와인이 흘러넘쳐 병목 주변에 엉겨 붙는다. 흘러넘친 와인이 산소 침입을 막아 숙성 과정에서 병목 주변에 자연스럽게 곰팡이가 생기는데, 이는 르루아 와인만의 양조 방식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