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면 당신의 고독이 흘러요, 에드워드 호퍼[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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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한 작은 식당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까지 네 명의 사람이 있네요. 그런데 다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남성은 등을 돌린 채 몸을 살짝 숙이고 있습니다. 가운데 남녀도 앞을 바라보고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연인처럼 보이긴 하지만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식당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구체적인 동작과 표정은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란 작품입니다. 현대인의 고독을 고스란히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식당을 그린 것 뿐인데 고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작품 속 상황이 너무나 흔하고 익숙한 일상 속 모습이라 마치 어디서 본 듯한,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어쩌면 여러분의 어제 또는 오늘 밤의 모습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차가운 밤 공기와 호젓한 적막,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끼 때우러 들어간 작은 식당, 밥을 먹으면서도 다 털어내지 못한 오늘의 무게, 내일을 또 살아내야 하는 버거움. 이 모든 상황과 분위기,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그림 속 인물들도 비슷할 겁니다.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 누군가는 배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에겐 내면의 고독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신가요. 사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연인, 친구라 해도 그 감정을 온전히 다 털어놓긴 어렵습니다. 지독히도 못나고 초라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림은 누구에게도 미처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다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호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직장인으로 일하며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고군분투 했으니까요. 평범한 현대인의 초상 그 자체죠.
그의 삶은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네덜란드 출신의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화가의 꿈을 키우며 뉴욕 미술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꿈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습니다. 그는 광고 회사에 취직하고 삽화가로 일하며 돈을 벌었는데요. 바쁜 와중에도 그림을 꾸준히 그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개인전도 38살에야 처음 열게 됐습니다. 첫 개인전마저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개인전까진 한 작품도 팔지 못했죠. 호퍼의 예술가로서의 여정은 41살 결혼 이후 급변하게 됩니다. '아침의 해' 등 그의 작품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대부분이 아내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입니다. 조세핀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호퍼의 그림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직접 모델이 되어줬죠. 그의 전시도 적극 도왔습니다.
아내의 힘 덕분인지 같은 해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호퍼는 모든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전업 화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를 '다정한 부부'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호퍼는 매우 깐깐하고 고집이 셌습니다. 반면 조세핀은 밝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다른 성격 탓에 심각할 정도로 격정적인 부부 싸움을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심지어 호퍼는 아내가 화가로서 활동하는 것도 통제했습니다. 결국 조세핀은 그의 모델이자 매니저이자 조력자로 남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호퍼의 작품 속 조세핀의 모습은 유독 외로워 보입니다.
호퍼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고독은 '빛'을 통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는 순간을 담아내,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 덕분이죠. 그 대비는 공간과 인물에 나타난 그림자를 통해 명확히 드러납니다. 빛이 찬란할수록 그림자는 더 길어지는 법. 강렬한 빛으로 더욱 길고 어두워진 그림자는 인물의 깊고 어두운 고독을 표상합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차갑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 또한 빛 덕분인데요. 따뜻함이 있기에 고독이 지나치게 치명적이거나 위협적이진 않아 보이는 거죠. 오히려 그림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이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건 아마도 이 따뜻함 때문일 겁니다. 그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사진 작가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호퍼의 '철길 옆의 집'을 보고 영감을 받아 명작 '사이코'(1960)의 주요 배경이 되는 빅토리안 하우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은 호퍼의 13편의 작품을 고스란히 담아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에 담아냈습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모든 순간엔 내가, 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면 오롯이 나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외로운 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영원할 것이고, 나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겁니다. 호퍼의 그림과 함께 당신의 고독한 걸음을 응원합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꼽히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란 작품입니다. 현대인의 고독을 고스란히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식당을 그린 것 뿐인데 고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작품 속 상황이 너무나 흔하고 익숙한 일상 속 모습이라 마치 어디서 본 듯한,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어쩌면 여러분의 어제 또는 오늘 밤의 모습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차가운 밤 공기와 호젓한 적막,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끼 때우러 들어간 작은 식당, 밥을 먹으면서도 다 털어내지 못한 오늘의 무게, 내일을 또 살아내야 하는 버거움. 이 모든 상황과 분위기,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그림 속 인물들도 비슷할 겁니다.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 누군가는 배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에겐 내면의 고독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신가요. 사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연인, 친구라 해도 그 감정을 온전히 다 털어놓긴 어렵습니다. 지독히도 못나고 초라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림은 누구에게도 미처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다 담아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호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직장인으로 일하며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고군분투 했으니까요. 평범한 현대인의 초상 그 자체죠.
그의 삶은 어릴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네덜란드 출신의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화가의 꿈을 키우며 뉴욕 미술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꿈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습니다. 그는 광고 회사에 취직하고 삽화가로 일하며 돈을 벌었는데요. 바쁜 와중에도 그림을 꾸준히 그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개인전도 38살에야 처음 열게 됐습니다. 첫 개인전마저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개인전까진 한 작품도 팔지 못했죠. 호퍼의 예술가로서의 여정은 41살 결혼 이후 급변하게 됩니다. '아침의 해' 등 그의 작품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대부분이 아내 조세핀 버스틸 니비슨입니다. 조세핀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호퍼의 그림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직접 모델이 되어줬죠. 그의 전시도 적극 도왔습니다.
아내의 힘 덕분인지 같은 해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서 호퍼는 모든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전업 화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를 '다정한 부부'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호퍼는 매우 깐깐하고 고집이 셌습니다. 반면 조세핀은 밝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다른 성격 탓에 심각할 정도로 격정적인 부부 싸움을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심지어 호퍼는 아내가 화가로서 활동하는 것도 통제했습니다. 결국 조세핀은 그의 모델이자 매니저이자 조력자로 남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호퍼의 작품 속 조세핀의 모습은 유독 외로워 보입니다.
호퍼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고독은 '빛'을 통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는 순간을 담아내,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 덕분이죠. 그 대비는 공간과 인물에 나타난 그림자를 통해 명확히 드러납니다. 빛이 찬란할수록 그림자는 더 길어지는 법. 강렬한 빛으로 더욱 길고 어두워진 그림자는 인물의 깊고 어두운 고독을 표상합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차갑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 또한 빛 덕분인데요. 따뜻함이 있기에 고독이 지나치게 치명적이거나 위협적이진 않아 보이는 거죠. 오히려 그림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이 그의 작품들에 열광했던 건 아마도 이 따뜻함 때문일 겁니다. 그는 수많은 영화감독과 사진 작가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호퍼의 '철길 옆의 집'을 보고 영감을 받아 명작 '사이코'(1960)의 주요 배경이 되는 빅토리안 하우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은 호퍼의 13편의 작품을 고스란히 담아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에 담아냈습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로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 한 걸음은 자기 혼자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모든 순간엔 내가, 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면 오롯이 나의 숨소리만이 들리는 외로운 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영원할 것이고, 나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겁니다. 호퍼의 그림과 함께 당신의 고독한 걸음을 응원합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