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나눔의 끝은 장기기증" 다 주고 가겠다는 괴산 김경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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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쌈짓돈 털어 2천여만원 기부…거동 불편 아내 돌보며 사랑 실천
"젊을 때 고단한 삶이 나눔의 원천…이웃 돕고 웃으며 사니 병도 나아"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나눈 덕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내가 고맙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사는 김경회(85) 할아버지는 지난달 21일 TV를 보다가 한달음에 면사무소로 향했다.
그리곤 우크라이나 국민과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며 50만원씩 총 1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자녀들이 준 용돈을 절약해 모아둔 돈이었다. 그는 "내가 전쟁을 겪고, 고생이 많이 해봐서 잘 안다"며 "사람이 어려울 때 조금만 도와줘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아느냐"고 말했다.
청천에서 나고 자란 김 할아버지는 이런 나눔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고 전했다.
동네 노인회장을 맡았던 2017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지역인재 양성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0여차례에 걸쳐 내놓은 성금은 2천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받은 코로나19 재난지원금도 한 푼 손대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을 보태 기부했다.
그는 "늙은이라 돈을 크게 쓸데도 없고, 자식들도 다 잘살고 있으니 큰 걱정이 없다"며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랑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조금만 아껴 쓰면 어려운 이웃도 돕고 얼마나 좋으냐"고 미소 지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눔의 원천'은 젊었을 적 고단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한기에는 도시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노동하는 등 고단하게 생계를 이었다.
그런 그의 곁을 아내는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지켰다.
부부의 희생과 노력으로 두 아들과 딸은 훌륭히 성장해 가정을 꾸렸다.
비로소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야 할 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10여년 전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 할아버지는 2015년께 폐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직접 간호하며, 병마와 싸웠다.
이런 자신보다 힘든 이웃을 생각하며 틈틈이 나눔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소일삼아 다슬기를 잡고, 약초를 캐 홀로 사는 이웃을 챙겼다.
2017년 유례없는 폭우로 수해가 났을 때는 자신의 집에도 피해가 있었으나, 홀로 사는 90대 이웃의 보일러를 먼저 교체해 주기도 했다.
그의 선행에 하늘도 감복했을까,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마를 이겨낸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 폐암 완치 판정을 받았고, 몸은 불편하지만 고마운 아내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니깐 병도 낫고, 아내도 덜 아프고 이렇게 지내는 게 아닌가 싶다"며 "혼자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데, 우린 함께 있으니 내가 복이 많은 거다.
고생을 많이 한 아내에게 미안해 죽는 날까지 옆에서 챙겨주고 싶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눔의 끝은 장기 기증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다 늙어 쓸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눈 만큼은 지금도 다 잘 보이고 좋다"며 "죽으면서 욕심낼 필요 있나, 두고 갈 게 있으면 나눠야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펄쩍 뛰지만, 성금 몇 푼 내는 것보다 안 보이는 사람을 보이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할아버지는 끝으로 "서로 돕고 웃으며 사는 게 제일"이라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걸 보고 다른 이들도 서로 돕고 나누는 더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젊을 때 고단한 삶이 나눔의 원천…이웃 돕고 웃으며 사니 병도 나아"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나눈 덕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으니 내가 고맙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사는 김경회(85) 할아버지는 지난달 21일 TV를 보다가 한달음에 면사무소로 향했다.
그리곤 우크라이나 국민과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해 써달라며 50만원씩 총 1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
자녀들이 준 용돈을 절약해 모아둔 돈이었다. 그는 "내가 전쟁을 겪고, 고생이 많이 해봐서 잘 안다"며 "사람이 어려울 때 조금만 도와줘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아느냐"고 말했다.
청천에서 나고 자란 김 할아버지는 이런 나눔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고 전했다.
동네 노인회장을 맡았던 2017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지역인재 양성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10여차례에 걸쳐 내놓은 성금은 2천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받은 코로나19 재난지원금도 한 푼 손대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을 보태 기부했다.
그는 "늙은이라 돈을 크게 쓸데도 없고, 자식들도 다 잘살고 있으니 큰 걱정이 없다"며 "나라에서 나오는 돈이랑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조금만 아껴 쓰면 어려운 이웃도 돕고 얼마나 좋으냐"고 미소 지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눔의 원천'은 젊었을 적 고단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한기에는 도시 공사장을 전전하며 막노동하는 등 고단하게 생계를 이었다.
그런 그의 곁을 아내는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지켰다.
부부의 희생과 노력으로 두 아들과 딸은 훌륭히 성장해 가정을 꾸렸다.
비로소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야 할 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10여년 전 아내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거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김 할아버지는 2015년께 폐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직접 간호하며, 병마와 싸웠다.
이런 자신보다 힘든 이웃을 생각하며 틈틈이 나눔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소일삼아 다슬기를 잡고, 약초를 캐 홀로 사는 이웃을 챙겼다.
2017년 유례없는 폭우로 수해가 났을 때는 자신의 집에도 피해가 있었으나, 홀로 사는 90대 이웃의 보일러를 먼저 교체해 주기도 했다.
그의 선행에 하늘도 감복했을까,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마를 이겨낸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 폐암 완치 판정을 받았고, 몸은 불편하지만 고마운 아내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니깐 병도 낫고, 아내도 덜 아프고 이렇게 지내는 게 아닌가 싶다"며 "혼자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데, 우린 함께 있으니 내가 복이 많은 거다.
고생을 많이 한 아내에게 미안해 죽는 날까지 옆에서 챙겨주고 싶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김 할아버지는 자신의 나눔의 끝은 장기 기증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다 늙어 쓸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눈 만큼은 지금도 다 잘 보이고 좋다"며 "죽으면서 욕심낼 필요 있나, 두고 갈 게 있으면 나눠야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펄쩍 뛰지만, 성금 몇 푼 내는 것보다 안 보이는 사람을 보이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할아버지는 끝으로 "서로 돕고 웃으며 사는 게 제일"이라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걸 보고 다른 이들도 서로 돕고 나누는 더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