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진국 안착 위해선 '기초과학'이 필수다

토대가 부실하면 국가 안보까지 위협
연구 저변 넓혀야 '과학기술 5대 강국'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이번 대선에서 과학기술 육성은 주요 쟁점이 되었다. 신정부 또한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 정책을 추진 중이다. 과학기술 강국의 당위성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자는 논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소부장(일본 수출규제로 촉발된 소재·부품·장비 위기), 코로나, 탄소중립 등의 상황에서 드러난 국가 과학기술력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다만 국가 과학기술 정책 아젠다가 대부분 정보통신, 산업기술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쉽다. 한국은 과학기술 후발주자임에도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히고 눈부신 성장을 일궜다. 전자,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구축 등의 분야에 주력한 결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에 도달했다. 응용연구와 기술개발 분야가 집중 지원을 받는 동안 기초과학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기초 체력 다지기가 소홀해진 것이다.부실한 기초과학 체력은 국가의 안보 위협으로 나타났다.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물자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업계는 크게 휘청거렸다. 소재·부품 분야의 기술 종속은 기초연구 기반을 쌓지 못해 일어난 국산화의 한계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서야 한국의 바이러스 기초연구의 투자가 저조했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미국의 모더나 RNA 백신 개발은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해온 mRNA 관련 기초과학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00여 년 전부터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를 해왔던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기초과학의 저력을 바탕으로 눈부신 과학기술 성장을 이룬 경험이 있고 항상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창출해 경쟁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과거에는 과학기술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50~100년이 걸렸으나, 오늘날에는 2차전지, mRNA백신의 예처럼 10년, 20년 전의 기초과학 연구결과가 바로 산업기술로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 또한 감염병, 기후위기 등 지속되는 자연의 예측 불가능한 반격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기초과학 연구능력과 연구자를 상시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세계의 지식은행에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팬데믹 초기 국내 기초과학자가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 지도를 정확히 구현해 전 세계에 코로나 대응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은 좋은 사례다. 이전처럼 다른 나라가 쌓아둔 지식을 단순히 꺼내어 활용함으로써 국가 발전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더해 세계 지식경제를 선도하며 아울러 미래 국가발전의 동력을 찾아가야만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기초과학이 필수인 국가가 된 것이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인 ‘과학기술 5대 강국으로의 도약’은 기초과학의 성장이 수반돼 전반적인 국가 과학력이 높아질 때 가능하다. 그동안 경쟁력을 키워온 응용, 산업기술을 세계 선두급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과학 연구능력도 세계 10위권 이내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초과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수적인 시점에서, 과학기술에 중심을 둔 새 정부의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구축 논의에 관심이 간다. 기초과학에 국가적 관심을 높이고, 현 과학기술과 지식의 한계를 돌파하며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