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35곳…'M&A 블랙홀' 된 에이치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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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유통·제조·진단 등에이치엘비그룹이 바이오업계 인수합병(M&A)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구명보트를 만들던 회사(현대라이프보트)로 시작해 이제는 신약 개발은 물론 유통, 제조, 진단 등 거의 모든 바이오 영역에 손을 뻗쳤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큰 바이오 사업 특성을 고려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전략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공격적인 M&A로 세를 불리는 행보에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신약 개발이라는 본업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이오 모든 영역에 진출
리보세라닙 美허가 실패 대비
리스크 회피 차원이라는 분석
"신약개발은 성과 없어" 비판도
공격적 M&A에 계열사 35곳
12일 에이치엘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이 회사의 계열사 수는 35곳(상장 6곳, 비상장 29곳)이다. 자산총액 규모로 재계 6위인 포스코와 계열사 수가 같다. 에이치엘비가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배경에는 M&A가 있다.에이치엘비는 작년에만 국내외 바이오 회사 4곳을 인수했다. 백신 개발·유통사 지트리비앤티(현 HLB테라퓨틱스), 체외진단 의료기기 업체 에프에이, 비임상수탁기관(CRO) 노터스가 대상이다. 노터스는 에이치엘비를 최대주주로 맞은 지 1주일여 만에 유전자가위 기술을 가진 또 다른 신약 개발사 무진메디에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에이치엘비는 작년 초에는 몸속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찾아가 공격하도록 하는 항암제(CAR-T) 개발 바이오벤처인 미국의 베리스모 테라퓨틱스를 인수했다. 이보다 앞서 치료 백신 플랫폼을 보유한 미국 이뮤노믹 테라퓨틱스, 패혈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벤처 단디바이오(HLB사이언스) 등도 차례로 인수했다.업계 관계자는 “순전히 M&A를 통해 신약 개발부터 비임상·임상, 제조, 유통뿐만 아니라 진단기기 사업체까지 거느린 종합 바이오 헬스케어 회사 외형을 갖췄다”고 했다.
관건은 ‘리보세라닙’ 美 허가
에이치엘비는 100% 자회사인 미국 엘레바 테라퓨틱스를 통해 표적항암제인 리보세라닙 글로벌 상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엘레바는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판권(중국, 한국 제외)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어드벤첸연구소가 개발한 후보물질인데, 2020년 에이치엘비가 글로벌 권한을 사들였다. 중국에서는 항서제약이 이미 허가를 받아 2014년부터 팔고 있지만 이외 지역에선 허가를 받지 못했다.엘레바는 리보세라닙의 미국 식품의약품(FDA) 품목 허가를 3년째 시도하고 있다. 말기 위암 치료제로 2019년 글로벌 임상 3상을 끝낸 뒤 FDA와 품목허가 전 사전미팅까지 했지만 자료 보완을 요구받았다. 가장 중요한 잣대인 임상 1차 지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FDA가 요구한 보완 자료 정리를 마쳤다”고 했다.에이치엘비는 임상이 완료된 위암과 현재 글로벌 임상 3상 중인 간암, 한국과 미국에서 임상 2상 중인 선양낭성암 가운데 최소 두 가지 암종에 대해 1년 내에 FDA 품목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리스크 분산 전략”
에이치엘비의 공격적인 M&A는 ‘리보세라닙 리스크’를 염두에 둔 선제적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에이치엘비의 M&A 행보는 굉장히 공격적”이라며 “리보세라닙 실패 가능성을 다른 사업으로 사전에 분산하려는 조치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바이오 업종 내에서 M&A로 사업을 다각화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라며 “다양한 분야에서 신약 개발을 시도해 회사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성공 가능성도 키우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