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소벤처기업부는 누굴 위해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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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등 노동규제에 침묵“이제 그만 좀 하시죠.” 지난해 여름 중소기업으로의 주 52시간제 확대 시행을 앞둔 어느 날, 중소벤처기업부 고위 간부가 중소기업단체 임원에게 큰 소리로 화를 벌컥 냈다. 주 52시간제 확대에 따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더불어민주당 고위당직자에게 호소하자 중간에 말을 끊은 것이다. 여당이 중기의 애로를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이 간부는 오히려 “주 52시간제 시행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중기 관계자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순진하게 중기부가 중소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것이라 믿었던 중기인들만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중기인 대변하는 장관 나와야
안대규 중소기업부 기자
당시 사건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중기부 해체설’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정작 중소기업계에선 ‘중기부 유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기부가 확 바뀌어야 한다”는 성토의 목소리만 난무한다.중기부가 가장 가까이 접촉했던 중기들로부터 외면받는 데는 중기부의 ‘원죄’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중기부는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중기에 큰 타격을 준 정부 정책 도입을 막는 데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했다. 중요한 현안에 장관이 ‘직을 걸고’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새 제도의) 현장 안착을 지원하겠다”거나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하나마나 한 입장이나 밝혔을 뿐이다.
오히려 일부 장관들은 보여주기식 쇼에만 골몰했다.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옥죄는 노동 규제를 홍보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중소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지방 중소기업을 살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내수시장만 잡아먹는 플랫폼 기업 키우기에 골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부가 잘한 중소기업 정책을 물은 설문에 22.3%나 “없다”(중소기업중앙회 조사)고 답한 결과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중기부는 거듭해서 폐지론이 제기되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18개 정부 부처 중 유일한 대상별 조직이다. 688만 개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해 경제, 산업, 고용, 복지 등 기능별 정부 부처의 중기 관련 규제 개선을 이끌고 협업해야 하는 부처다.
중기가 처한 현실에 계속 눈을 감고, 과거처럼 쇼만 이어가기엔 중소기업계가 맞닥뜨린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다. 코로나19 충격파는 여전히 매섭다. 강력한 노동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은 중기의 목을 죄고 있다. 중기인들이 생각하는 중기부의 ‘존재 이유’는 경쟁력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과도한 규제를 막아내는 일이다. 차기 중기부 장관이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와 싸우는 모습을 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