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과제만 늘어놓는 인수위…'노동·교육·연금개혁' 빅픽처는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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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엔 강한데…나이 계산법 변경, 반도체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 방안, 코로나19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개편 방안….
법정나이·양도세 등 현안에 매몰
5년 이끌어갈 국가 비전은 아직
용산 이전·인선에 너무 진빼고
공동정부 구성·여소야대 '한계'
"인수위 1개월 = 정부출범 1년
이슈만 좇을 때 아니다" 비판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정책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책의 방향성이나 내용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인수위가 너무 세부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앞으로 5년간 정부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비전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장관급 인사는 “인수위 1개월은 정부 출범 이후 1년만큼 중요한데, 이 시간을 일회성 정책을 만드는 데 허비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특히 인수위 및 정권 초기에만 할 수 있는 개혁 관련 아젠다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많다. 잠재성장률이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장기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려면 국가 개혁 과제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5년간의 집권 기간에 밀어붙여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 잠재성장률’ 공약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2030년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장기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인 노동·교육·연금·공공개혁에 대한 언급은 아예 사라진 상태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인수위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예고된 사태’라는 분석도 있다. 교육 전문가는 인수위원에 아예 없고, 평소 연금 및 공공개혁을 강조한 인사도 인수위 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인수위 내부에서 노동개혁이라는 표현을 가급적 쓰지 말자는 방침을 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의사 출신을 앉힌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당장의 현안인 코로나19를 대응하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연금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이유에서다.
윤 당선인이 비공개 참모 회의에서 “교육개혁 한번 해봅시다, 노동개혁도 제대로 해봅시다”라고 외칠 정도로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인수위에서는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세제개혁에 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 등 구체적인 정책은 나오지만, 전체적인 세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언급한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아직 없다.
정치권에서는 인수위가 출범 직후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에 너무 진을 빼다 보니 이후 대형 아젠다를 제시할 동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측 인사들과 기존 윤석열 캠프 측 인사들이 뒤섞이면서 인수위 내에서 국정철학이 완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감한 개혁을 언급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앞으로 대형 아젠다를 제시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무위원 및 대통령비서실 인선이 마무리되면 인수위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추경호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와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 등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인사청문회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인수위는 조만간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국정과제 역시 대형 아젠다보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주요 분야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그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나 연금개혁 등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인수위는 국가가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은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도병욱/황정환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