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불법'인데 앞다퉈 투자…수백억대 뭉칫돈 몰렸다 [긱스]

불법인 '비대면 의료'…VC들은 왜 앞다퉈 돈을 넣었을까
비대면 진료는 '불법'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감영병 위기 대응 경보가 '심각'에서 '경계'로 낮춰지면 예전처럼 금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털(VC)업계의 비대면 진료 투자 분위기는 뜨겁기만 합니다. 대기업의 관심도 높습니다. 새 정부가 육성 의지를 높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투자하기엔 리스크가 큽니다. 비대면 진료 분야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은 어떤 속내를 가지고 기회를 모색하고 있을까요. 한경 긱스(Geeks)가 비대면 진료에 꽂힌 투자 전문가들을 만나봤습니다.
사진=뉴스1
코로나19로 열린 비대면 진료 시장. 2년 새 관련 플랫폼들은 크게 성장했다. 비대면 진료와 처방약 배송 서비스를 하는 닥터나우가 대표적이다. 누적 이용자 수가 400만명을 넘었다. 실시간 중개 서비스가 강점인 ‘굿닥’ 비브로스의 ‘똑닥’ 라이프시맨틱스의 ‘닥터콜’ 또 블루엔트의 ‘올라케어’도 떴다. 비대면진료를 한다는 앱 숫자만 30여개나 된다. 현행법 상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다. 2020년 2월, 감염병 상황을 감안해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코로나19 유행이 완전히 끝나면 비대면 진료를 할 길은 법적으로 막힌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해당 비즈니스를 유지할 수 있겠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코로나 유행이 잦아들면서 비대면 진료 이용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와이즈앱 분석 결과 4월의 비대면 진료 앱 이용자는 3월보다 감소했다.

그럼에도 벤처캐피탈(VC)들은 주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돈을 넣고 있다. 닥터나우는 400억원(누적 520억원), 굿닥 210억원, 메디르는 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최근 유치했다. VC들은 왜 불법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 시장에 투자를 결정했을까.

소프트뱅크벤처스 "규제가 기회"

닥터나우에 투자한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성종헌 책임심사역에게 투자 이유를 묻자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직접 써봤을 때 충격적이었다. 파괴력이 있는 영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고객의 수요가 큰 영역에 현재 규제가 있다면, 이 규제가 풀릴 경우 이 시장은 굉장한 기회가 된다”고 했다. 성 책임심사역의 얘기를 더 들어보면,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비대면 진료가 계속될까.
“규제가 풀릴 걸 예상한다. 근거가 있다. 일단 국민 여론이 좋다. 우리(소프트뱅크벤처스)도 타다에 투자한 적이 있고, 타다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되는 경험도 했다. 지금은 타다 때와는 다르다. 비대면진료에 대한 여론이 압도적으로 좋다. 96%가 찬성한다. 타다 서비스에 강하게 반발했던 택시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가 있었지만 의약계는 화이트컬러다. 여론이 다르다.”

비대면 진료를 막는 대표적인 규제는 의료법 제33조 제1항이다. ‘의료인은 이 법에 따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라고 돼있다. 이 조항에 따라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지만, ‘심각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를 발령했을 때’를 전제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상태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한시적이 아닌 완전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플랫폼 앱처럼 비대면 진료가 산업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약 배달에 전면 반대한다. 대형병원(약국) 쏠림현상과 오진과 오배송 가능성, 개인정보 유출 등이 이유다. -의사협회 반대는.
“우리가 의료인 단체들의 인터뷰를 했을 때 캐치했던 게 있다. 여전히 (의사협회가) 부정적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의견들이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거다. 의사협회 내에서도 ‘이건 피할 수 없는 흐름이고, 차라리 우리가 리드해서 원격의료라는 흐름 자체를 가져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원격의료 안 된다고 나서서 반대하셨던 분이 창업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쓸까.
“쓴다. 굉장히 편하다는 걸 경험해봤기 때문에 간단한 진료는 쓸 거다. 이미 비대면 진료 자체가 실생활로 전환됐다. 규제가 풀리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그레이’한 영역에 투자하는 걸 좋아한다. 기회니까.”

-고려했던 리스크는.
“그 역시 규제다. 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100%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카카오벤처스 "시장 안착에 시간 필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 ‘메듭’ 운영사 메디르에 투자한 의사 출신인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는 “코로나19로 떴던 시장이 한번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결국 법은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에 차근차근 엮어가야 한다. 생각보다 (시장이 완전히 안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비대면 진료가 허용될까.
“(초진이 아닌) 재진 정도라면 합의의 여지가 있다. 한시적 허용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여건 상 미국처럼 이것저것 다 열리진 못할 걸로 본다. 동네 의원, 재진 환자 위주의 원격진료 모델로 입법화될 가능성이 크다.”

-변수는.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의사에게 비대면 진료 수가를 두 배로 줬다. 의사들 입장에선 두 배 안줬으면 안했을텐데, 돈을 줘서 한 게 분명히 있다. 코로나가 가라앉으면 두 배까진 줄 수 없다. 그 이후에 의사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거냐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돈을 줘서 했으니 이제와서 (의사단체가) 반대하기 창피한 상황이 된 측면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비대면 진료 시장이 성장할까.
“한 번은 푹 가라앉을 거다.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진료가 급증한 배경엔 코로나 환자는 원격진료가 무료고, 의사는 수가를 두배로 받았던 이유가 크다. 양쪽이 맞은 건데 이 두가지가 다 꺼져버리고, 그 이후 반복적으로 (비대면 진료 행위가) 일어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해외도 그렇나.
“미국도 큰 웨이브(유행)가 한번 지나가니까 비대면 진료가 전체 진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확 줄었다. 코로나 한창일 때는 ‘원격진료가 미래다’ 이런 얘기를 하다가 이제는 ‘원격진료만 할 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모델을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끝내 비대면 진료 허용이 안되면 어떡하나.
"내가 투자한 메디르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격진료 말고도 여러가지 모델들을 같이 염두에 두고 있다. 원격 상담 서비스다. 안전장치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해볼만한 회사라고 판단했다."

플랫폼 대표들 "비대면 시장 열릴 것"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플랫폼 대표들은 지금이 50년만에 온 ‘기회’라고 강조했다. “연 10억 건의 처방 중 5~10%가 비대면으로 바뀔 것”(임진석 굿닥 대표), “3년 안에 원격의료 규제가 다 풀릴 것”(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라고 했다. 비대면 진료앱을 운영하는 두 대표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임진석 굿닥 대표(왼쪽),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오른쪽)
-비대면 진료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있는데 전망은.
“한순간에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결국엔 대통령이 끌고 나가야 한다. 워낙 이해관계자들이 많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의사, 약사, 환자, 플랫폼 네 곳이 합의점을 잘 찾아야할 거고, 합의가 잘 이뤄진다면 합법화될 수 있다. 비대면 진료는 이미 흐름을 탔다.” (임진석 굿닥 대표)

-의료계 입장이 변수인데.
“의사단체가 반대했던 이유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종합병원으로 다 몰릴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81%가 1차 의원급을 이용했고,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은 20%밖에 안 됐다. 오히려 1차 의원들도 돈을 벌 수 있는 창구가 생긴 거다. 실제 어떤 약국은 폐업 위기였는데 우리와 제휴하면서 매출이 늘었다.” (장 대표)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면 전체 파이 자체가 커진다. 접근성이 높아져 진료를 안 받던 사람들이 쓴다. 바빠서 병원 안 찾았던 회사원들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 낮에 진료를 받고, 여성질환 수요도 더 늘어난다.” (임 대표)

-개원가 입장에서 환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환자와의 접점이 늘어나는 거다. 다른 종류의 새로운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환자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고, 케어를 하는 주치의 개념이 생긴다.” (임 대표)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오진이나 약물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의료계는 30년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우리나라만큼 마약류 잘 통제되는 나라도 없다. 철저하게 관리하면 된다.” (장 대표)
“오진 우려도 거의 없다. 허용범위가 감기나 만성질환 관리 수준일 거다.” (임 대표)

-허용 범위가 어디까지 될 걸로 예상하나.
“초진은 비허용, 재진부터 허용 얘기가 나오는데 초진도 허용해주는 게 맞다. 재진만 허용해주면 기존에 잘되는 병원만 잘 된다. 예를 들어 밤에 아기가 아플 경우 다니던 병원이 24시간 하는 게 아니라면 새로운 데 가서 초진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막으면 응급실에 갈 수밖에 없다.” (장 대표)
“환자들은 초진까지 다 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의약계가 어떻게 판단할지 여부는 예단하기가 어렵다. 개원가 쪽은 해보니 걱정했던 부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컨센서스가 생기는 느낌이다. 약사회 쪽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임 대표)
임진석 굿닥 대표
-비대면 진료 자체가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수요 아닐까.
“한 해 발행되는 처방전이 10억건이다. 저는 이중 5~10%는 온라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본다. 한번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재사용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들은 1분이라도 빠르면 좋아한다. 배달음식 시장도 맨 처음에는 집 나가면 바로 식당이 있는데 누가 이걸 이용하냐고 하지 않았나.” (임 대표)
“미국의 텔레닥은 기업가치가 44조원이다. 중국 최대 보험회사인 핑안보험도 핑안굿닥터라는 자회사를 세워 원격진료 플랫폼을 출시했는데 현재 회원수가 3억명이나 된다. 비대면진료가 허용된 나라들에서 유니콘, 데카콘이 이미 나오고 있다.” (장 대표)

-플랫폼은 뭘로 돈을 버나.
“지금은 비급여 진료 광고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치과, 한의원 등에 비급여 시설 광고를 한다. 수수료 모델은 의료법 때문에 쉽지 않다.” (임 대표)
“우리도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그걸 기반해서 돈을 벌 단계도 아니고, 목표도 그게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의료기기 쪽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고,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짤 수도 있다.” (장 대표)

이들은 롤모델로 금융 플랫폼인 토스를 꼽았다. 장 대표는 "몇 년전만 해도 ‘돈 이체할 때 중간에 해킹되면 어쩌고. 개인정보 유출되면 어쩌고’ 우려했지만 결국 잘 자리잡지 않았나. 의료업계의 토스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임 대표는 “토스가 슈퍼앱 전략으로 성공했는데 우리도 헬스케어에서 슈퍼앱이 돼 서비스 가치를 창출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비대면의료 어떻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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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이 끝났다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부는 비대면진료협의체를 구성해 제도화를 논의하기로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포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팬데믹 이후에도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친 적 있다. 의료 지원 여건이 열악한 군 격오지를 중심으로 이동형 원격진료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련 단체마다 견해 차가 아직 크다. 이를 조율해가며 비대면 진료의 정의부터 허용 범위, 대상까지 치열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의협은 플랫폼 앱처럼 비대면 진료가 산업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원격진료는 보완수단이어야 한다”며 “환자에게 연속성 있는 진료를 제공해야 하는데, 비대면 진료 앱은 어렵다”고 말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비대면 진료 시행 시 △환자 위치 기준 지역 내 1차 의료기관 허용·제한적 2차 의료기관 협진 △초진 불가 △진료 가능 질환 및 처방 약, 월 환자 수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약사회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할 수 없다며 앱을 통한 비대면 약 배달에 전면 반대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과 간담회를 하는 모습.
윤석열 정부가 원격의료를 정식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원격의료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한 현행 의료법을 필수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당초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일부 보이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다시 국민의힘과 민주당 대립의 중심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시민단체들이 의료 영리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고은이/이선아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