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 안방을 퀄컴에 내준 셈"…'고군분투' 삼성 반도체의 현실 [실리콘밸리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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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S22 4대 중 3대에 퀄컴 AP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퀄컴(QUALCOMM)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미국 경제방송 CNBC에 출연해 삼성전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애플의 강력한 경쟁업체'라고 삼성전자를 띄워준 아몬 CEO는 갤럭시 스마트폰에 들어간 퀄컴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의 점유율을 공개했다. AP는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퀄컴의 주력 제품이다. 고객사(삼성전자) 제품의 자사 부품 점유율에 대해 납품업체가 얘기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삼성 자체 AP는 1대에 그쳐
AP 담당 시스템LSI사업부
경쟁사 대비 인력, 투자 부족
최근 "갤럭시 전용 AP 개발" 시사
퀄컴 압도했던 영광 되찾을까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S21에 들어간 AP를 놓고보면 퀄컴의 점유율은 40~50%였습니다. 얼마 전에 나온 갤럭시 S22에서 퀄컴의 점유율은 75%까지 올랐습니다
스마트폰 수요 둔화에 따른 AP 판매량 감소 우려로 퀄컴 주가가 하락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 꺼낸 말이다. 퀄컴의 주력 제품인 '스냅드래곤' AP는 성능이 뛰어나고, 삼성전자 같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제조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실적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몬 CEO의 발언을 뒤집어보면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이나 서비스)사업이 처한 현실이 드러난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품)부문은 퀄컴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용 AP '엑시노스'를 개발하고 판매하고 있다.
아몬 CEO의 말은 갤럭시 S22 4대 중 3대엔 퀄컴 AP, 1대에만 삼성 AP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AP 납품 경쟁에서 삼성전자 DS부문이 퀄컴에 완전히 밀렸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집(삼성전자) 안방(갤럭시S22)을 남(퀄컴)에게 내준 셈이다.
갤럭시 S22 '4대 중 3대'엔 퀄컴 AP...삼성전자 AP는 1대
삼성전자의 갤럭시S22용 AP '엑시노스2200'은 DS부문 산하 시스템LSI사업부가 설계를 담당했다. 생산은 파운드리사업부의 4nm 공정이다. 엑시노스2200의 그래픽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 유명 팹리스인 AMD와도 수 년 전부터 협력했다. 엑시노스2200은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힘을 쏟아부은 제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 스마트폰인 갤럭시 S22 4대 중 3대엔 퀄컴 AP가 들어가고 1대에만 삼성전자 AP가 들어간 이유는 뭘까. 여러가지 설(說)이 분분하지만 '성능'과 관련해선 삼성전자 DS부문이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퀄컴 AP와 최소 '비슷한' 성능만 냈어도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가 퀄컴 칩을 많이 썼겠냐는 것이다.두번째로는 생산을 맡은 DS부문의 파운드리사업부가 엑시노스 AP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최첨단 4nm 공정의 수율(생산량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과도 직결된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4nm 공정 수율이 경쟁사 대비 크게 낮다는 수율이 낮다보니 납품량이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퀄컴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하지만 갤럭시 S22에 들어간 퀄컴 칩도 엑시노스와 같은 삼성전자 4nm 공정에서 생산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율이 핵심적인 변수는 아니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같은 공정에서 생산해도 주문을 맡긴 업체나 제품에 따라 수율이 다를 수 있지만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턱없이 부족한 AP 개발 인력...임원도 메모리사업부의 45% 수준
이번 일에 대해 기자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설계 역량이 떨어지는지, 파운드리사업부의 양산 기술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삼성전자 내부에서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따져보려는 건 아니다. 이는 반도체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진과 임직원들이 더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담당했었고,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의 반도체 전략에 대해 애플 임원으로부터 직접 들어본 입장에서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삼성전자 AP사업의 허술함'이다.삼성전자의 소비자 대상 주력 제품은 누가 뭐라해도 아직까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여러 부품 중에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게 두뇌 역할을 하는 AP다. '아이폰'이 회사 매출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애플은 이를 캐치하고, 스티브 잡스 생전부터 AP 경쟁력 강화에 주력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AP로 불리는 'A' 시리즈를 개발, 아이폰 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애플 임직원들이 아이폰 출시 행사에서 "A시리즈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경쟁업체(퀄컴이나 삼성전자)의 최신 AP는 애플의 몇 세대 전 AP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건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개발했고, 성능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삼성전자는 어떨까. 일단 인력이다. AP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의 인력은 퀄컴, 미디어텍 같은 경쟁사에 비해 턱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2021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시스템LSI사업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임원은 57명. 메모리사업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124명의 46% 수준이고 파운드리사업부(58명)보다도 적다. 메모리사업부나 파운드리사업부 인력이 필요할 때 1순위로 옮겨지는 게 시스템LSI사업부 직원들이란 얘기도 들린다. 전략 측면에선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엑시노스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엑시노스가 애플의 A시리즈처럼 '자사 스마트폰 전용'인지, 아니면 퀄컴이나 미디어텍처럼 '범용'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현업을 담당하는 사업부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의 생각이 다르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미국 법인 중심으로 진행됐던 몇몇 프로젝트들이 엎어졌고 외부 업체와 협업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애플 벤치마킹해 '갤럭시 전용 AP 개발' 시사...반전 카드 될까
반도체업계에선 '엑시노스의 위기'를 말한다. 어려운 상황인 건 부인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보급형 전문으로 취급됐던 대만 미디어텍이 프리미엄급 AP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퀄컴의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다. 자사 스마트폰 납품도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AP 점유율은 '매출' 기준으로 6.6%에 그치며 4위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4분기 판매 수량 기준으론 중국 유니SOC에도 밀린 5위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삼성 스마트폰사업부가 퀄컴과 미디어텍, 유니SOC로 주문을 옮기면서 엑시노스 출하량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반전의 계기가 있을까. 최근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이 직원 간담회에서 했다고 알려진 발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 사장은 "갤럭시 프리미엄 시리즈에 특화된 AP를 만들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물론 노 사장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엑시노스는 사실상 삼성전자 전용 아니었냐"며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엑시노스를 가장 많이 쓰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최고 임원이 직접 AP 전략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에서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크다. 삼성전자 엑시노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퀄컴에 밀렸던 건 아니다. 성능 측면에서 퀄컴 스냅드래곤을 압도했던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사업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요한 건 AP사업에 대한 삼성전자의 경영진의 진짜 생각이다. GOS(게임최적화서비스) 사태로 불거진 스마트폰 성능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카드로 잠깐 활용하고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다면, 엑시노스는 '퀄컴과의 가격협상을 위한 지렛대'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AP의 용도가 자율주행 자동차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엑시노스의 위상 재정립은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갈림길에 엑시노스가 서 있는 것이다.한국경제신문의 실리콘밸리·한국 신산업 관련 뉴스레터 한경 엣지(EDGE)를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하기 hankyung.com/newsletter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