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서 방독면 쓴뒤 '탕탕'…연기 속 "도망쳐라" 비명만(종합)

출근길 브루클린 지하철서 16명 부상…뉴욕 치안불안 공포 높아져
경찰, 초록색 공사현장 조끼 입은 165cm가량 흑인 남성 추적중
12일(현지시간) 오전 8시 30분께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방면으로 향하던 지하철 N트레인 열차 안에서 갑자기 흰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열차가 브루클린 선셋파크의 36번가역에 거의 진입할 무렵 키 165㎝에 육중한 체형의 한 흑인 남성이 갑자기 방독면을 꺼내 쓴 뒤 연막탄을 던진 것이었다.

연기가 객차 전체를 집어삼킬 무렵 곧이어 '탕탕탕'하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차에 타고 있던 야브 몬타노는 CNN방송에 "처음에 폭죽 소리인 줄 알았다"며 "의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 승객은 다른 객차로 연결된 문을 열고 도망가려 했으나, 결국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몬타노는 전했다.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고 상황을 깨달았다는 몬타노는 "내가 본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밟고 잠긴 문을 뚫고 나가려 하던 장면"이라며 "다행히 열차가 역으로 빠르게 들어섰고 모두가 허둥지둥 빠져나왔다"라고 밝혔다.
출근과 등교가 한창이던 시간이어서 이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은 40∼50명이나 됐다고 몬타노는 추정했다.

같은 열차에 3살짜리 딸을 데리고 탑승한 패트릭 베리(41)는 뉴욕타임스(NYT)에 "열차가 멈추더니 갑자기 앞쪽 칸에서 사람들이 '달려, 빨리 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사람들이 우리 칸을 지나쳐 전력으로 달려갔다"라며 자신도 딸을 안아들고 서둘러 대피했다고 밝혔다. 36번가역 승강장에 있던 시민들은 도착한 열차에서 뿌연 연기와 함께 피투성이 승객들이 쏟아져 나오자 뒤늦게 비상상황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총격은 승강장에서도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패닉 상태에 빠진 승객들은 3개 노선이 지나는 이 지하철역에서 다른 열차로 뛰어들기도 했다.

비슷한 시간 옆 선로로 들어온 R트레인 지하철은 부상자를 비롯해 대피하던 시민들을 태운 채 황급히 출발했다.

이 역에서 N트레인으로 갈아타고 맨해튼으로 출근하려던 전기공 호세 에체바리아(50)는 "아유다메"(스페인어로 '도와주세요')라고 비명을 지르는 젊은 부상자를 발견하고 그를 부축해 R트레인으로 도로 들어갔다고 NYT에 전했다.

에체바리아는 "그는 매우 두려워했고 무릎에 총탄을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총격범을 뉴유트레흐트역에서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역에서 대기하던 앰뷸런스까지 부상자를 옮겨줬다.

지하철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뉴욕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다수의 부상자를 발견하고 이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뉴욕경찰(NYPD)에 따르면 모두 10명이 총에 맞았고, 연기를 흡입하거나 다른 사람들에 깔려 다친 부상자까지 모두 16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5명은 중태지만, 현재는 안정적인 상태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시 당국은 밝혔다.
사건 직후 소방관들은 아직 터지지 않은 폭파 장치 여러 개를 발견했다고 밝혔으나, 이후 경찰은 실제 폭발물은 없었다고 정정했다.

도주 중인 용의자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입는 초록색 안전 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NYPD는 밝혔다.

이 조끼는 뉴욕시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 직원들이 착용하는 복장과도 비슷해 상당수 승객은 그를 MTA 직원인 줄 알았다고 한다.

경찰은 36번가 지하철역 인근 10여개 블록을 봉쇄하고 범죄 현장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테이프를 주위에 친 뒤 헬기까지 투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뉴욕시 교육부는 주변 학교들에 대피 명령(shelter in)을 내려 학생들을 학교 안에 머물게 하고, 외부인의 교내 출입을 금지했다.

이 지하철역으로부터 한 블록 내에만 초등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있다.

이날 사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뉴욕의 치안이 악화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NYPD 통계를 인용해 올해 1월1일부터 4월3일까지 뉴욕시 총격 사건이 전년 동기 260건에서 296건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하철과 역에서 폭력 등 강력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지하철에서 무차별 총기 범죄가 일어나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벌어진 36번가역은 브루클린 내 차이나타운과 가깝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아 인종적 동기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가 유홀(셀프 이사서비스 업체) 승합차를 빌릴 때 사용한 신용카드를 발견하고 신원을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CNN 방송이 전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