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보여준 '황제의 품격' [조수영의 골프 단짠단짠]

교통사고 뒤 14개월만에 정규투어 복귀
자신의 마스터스 최악 성적 냈지만 72홀 완주
우즈가 쓰는 부활 스토리, 이제 시작돼
사진=EPA
2라운드 연속 6오버파, 생애 첫 4퍼트, 13오버파 301타에 공동 47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가 2022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적어낸 스코어는 달콤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골프와 인생은 스코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걸 그는 나흘간의 플레이로 보여주었습니다. 끔찍한 사고를 겪었던 그가 다시 정규투어 무대에 서서 72홀을 완주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죠.

우즈 역시 이번 대회 내내 '황제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부담감이 컸을 1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를 쳐 공동 10위에 올랐습니다. "우승도 가능하다"는 기대섞인 전망이 나왔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체력이 달렸고, 그는 24년간의 마스터스 출전 가운데 최악의 스코어를 적어냈습니다. 홀을 지날때마다 그의 걸음걸이는 확연하게 불편해졌죠. 그래도 그는 미소와 의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답지 않게 4퍼트, 3퍼트를 거듭했지만 이번 대회 마지막 홀은 파로 마무리했습니다. 파 퍼트를 성공시킨 뒤에는 활짝 웃으며 패트론의 환호에 답례햇습니다. 그리고 "정규 투어 대회를 다시 뛸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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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내셔널GC를 가득 메우고 있던 패트론(갤러리)은 물론, 전세계에서 중계를 보던 골프팬들 역시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황제의 귀환을 지켜보는 전세계 시청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마스터스를 중계한 미국 CBS는 올해 최종 라운드 시청자는 평균 1017만3000명에 달했다고 13일(한국시간) 밝혔습니다. 이는 작년 대회보다 7% 늘어난 수치입니다. 대회 최종일 그린 위에서 검은 바지에 빨간 셔츠를 입은 우즈를 다시 보는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TV앞에 앉은 것이겠지요. 특히 우즈의 복귀 첫날인 1라운드, 컷 통과 여부가 달린 2라운드는 각각 전년보다 21%, 31%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마스터스가 끝난 뒤 우즈는 말했습니다. "1년 전 교통사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심지어 한달 전에도 나는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 지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섰고, 72홀을 모두 완주했습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절뚝거림을 숨길 수없을 정도로 다리는 여전히 불편했고, 이전처럼 퍼트는 정교하지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GOAT'( greatest of all time·이 시대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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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타왕’ 브라이슨 디섐보(29·미국),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32·미국), ‘골든 보이’ 조던 스피스(29·미국),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잰더 쇼플리(29·미국) 등 톱랭커들이 줄줄이 컷탈락을 당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300야드가 넘는 장타, 정교한 쇼트게임은 1년 전 두 다리가 산산조각 나고 6개월 전 목발을 짚고 있던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죠.

두 다리가 으스러진 끔찍한 사고, 그 이후 1년간 우즈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 했을 겁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던 순간, 그래도 우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완전치 않은 다리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얼어죽지 않을 정도까지 얼음찜질"을 하고 스스로를 담금질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희망과 부활의 아이콘이 되었죠.

"나는 매일 싸움을 치릅니다. 하루하루가 저에게는 도전이죠. 우리 모두는 매일 다른 도전을 맞이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전투를 준비합니다."
3라운드를 마치고 우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마스터스 출전 역대 최악의 성적인 6오버파 78타를 기록했지만 '내가 맞은 또 한번의 도전일 뿐'이라고 밝힌 것이죠. 우리 역시 매일의 삶에서 크고 작은 도전과 시련에 직면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길때도 있고, 질때도 있지요. 저의 경우에는 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즈는 아득하게 먼 곳에 있는 황제이지만, 이 말은 저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봐,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싸움을 치러. 오늘의 나를 봐. 이렇게 질 수도 있어. 그럼 뭐 어때? 털어내고, 내일 또 싸워보자구." 황제가 이렇게 어깨를 두드려준 느낌이었달까요.

비록 이번 도전에서 우즈는 동화같은 결말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즈가 만들어낼 동화같은 부활을 기다립니다. 그 역시 망설임없이 다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CC에서 열리는 '디 오픈'이 그의 다음 무대가 될 예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 전세계 골프팬들은 한마음으로 외치고 있을 겁니다.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타이거!"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