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무관용 사법만능시대 조민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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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대학원의 뒤늦은 입학 취소조민에 대한 대학과 대학원의 잇따른 입학 취소는 ‘조국 사태’의 비극적 장면이다. 나는 현 시점에서 그의 입학을 취소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본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인을 둘러싼 입시부정으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은 어머니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아버지인 조국(전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사회적 생명은 끝났다. 반성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마당에 사과하지 않을 자유 정도는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나왔을 때 ‘충분한 반성을 전제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타인의 양심과 영혼을 지배하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아서였다. 셋째, 조민도 큰 고통을 받았다. 보통 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혜택을 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사태가 불거진 이후 개인으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형식논리로 의사 자격증 박탈하면
10년 인생 통째로 날아갈 상황
최서원 딸 정유라와 비슷한 신세
기어이 고졸로 만들어 단죄하면
앞으로 누가 관용 정신 말하겠나
조일훈 논설실장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조민이 고려대 입학 이후 보낸 10여 년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다. 한 사회의 법과 제도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말 많고 탈도 많은 한국 입시 제도는 특히 그렇다. 조민의 입학에 시스템상의 준비 부족이나 허점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책임은 면제해줘야 하지 않을까.조민은 마치 타임머신 영화에 나오는 스토리처럼 누군가 10년 전으로 날아가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기로에 놓여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종류의 개운찮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이제야 입학을 취소한 고려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 결정도 유감이다. 애초에 입학 절차를 책임지고 있는 본인들이 가장 먼저 판단했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다가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가 임박해서야 입학을 취소해버렸다. 아무리 사법만능주의가 횡행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비겁하기 짝이 없는 처사다. 이러니 당사자가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조민의 의사 자격증은 풍전등화 신세다. 도미노식 형식논리를 이어가면 취소가 불가피하다.
대졸에서 졸지에 중졸로 변해버린 정유라의 경우와 비교해봐야 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중졸 처분도 잔혹한 것이었다. 대항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상대로 극한까지 몰아붙인 결과였다. 당시 고등학교 운동선수 중에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들은 학생들이 얼마나 됐겠나. 하지만 정유라가 중졸이라고 조민까지 고졸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다분히 보복적이다. 정유라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린다면, 조민도 비슷한 잣대로 봐줘야 하지 않겠나.조민이 등장한 한 가지 장면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2년6개월여 전 김어준이 방송프로그램에 조민을 불러냈을 때다. 상황을 이죽거리는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대학이나 대학원이 입학을 취소하면 고졸이 되는데 어떡하느냐.” 이때 조민은 “고졸이 돼도 상관없다. 서른에 의사가 못되면 마흔에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거침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김어준은 이길 수 없는 전쟁터에 조민을 몰아넣으며 주목도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따위의 인터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겉으로는 독립적 판단이 가능한 성인이었다고 해도 실상은 반발심에 포획된 학생이 아니었던가.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조국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김어준이 고졸을 운운한 지 2년6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모든 허물을 검찰 탓으로만 돌리며 허망한 SNS에 매달렸을 뿐이다.
부모 잘 만난 줄 알았던 조민은 역설적으로 부모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상황에 놓였다. 최서원과 그의 딸 정유라가 자꾸 오버랩된다. 나는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조민의 의사자격증을 취소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통합을 말하기 전에 조민 한 사람 정도는 포용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 한 명의 청년을 기어이 고졸로 만들어 자격증까지 박탈하면 장차 누가 관용의 정신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