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수필가 된 주부 "어떤 꿈도 늦은건 없죠"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유성은 《나를 찾아가는 직업》 펴내

가정주부 삶 뻔하지 않다는 걸
다른사람과 공감하고 싶어 글 써
공들인 일화는 교수 남편 이야기
그들도 우리랑 별다를 것 없더라

"잊혀진 꿈, 신춘문예 덕에 이뤘죠"
‘2021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자인 유성은 작가가 최근 펴낸 첫 수필집 《나를 찾아가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가정주부의 삶이 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에게도 추억이 있고, 삶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걸요.”

‘2021 한경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된 유성은 작가(40)가 최근 수필집 《나를 찾아가는 직업》(마음산책)을 펴냈다.유 작가는 “가정주부는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잘 다루지 않는 비주류적 존재”라며 “세상엔 정말 많은 주부가 있고, 이런 주부의 삶을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필집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간 수학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일상을 책에 담았다. 요로결석에 걸려 괴로워하면서도 응급실 야간 할증이 아까워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남편, 종일 곁을 떠날 줄 모르는 두 딸, 모처럼 이사한 신도시의 ‘엄마 커뮤니티’에서 소외됐던 지난날들, 화가가 되고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혼과 출산 후 잃어버린 꿈, 한경 신춘문예에 지원하게 된 과정 등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그는 원래 수필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듣다가 공모전 같은 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수필로 지원해본 거였죠. 심사평이라도 들어볼까 했죠.”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한동안 직업란에 ‘작가’라고 쓰는 재미로 살았던 이야기,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한 지 6개월 후에 아버지와 꼭 닮은 남자를 배우자 후보로 집에 데려온 이야기 등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는 “대학 교수인 남편 이야기를 쓰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며 “교수는 우리랑 좀 다를 것이란 생각을 깨고 싶어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그대로 담았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수필을 읽는 이유는 내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서 세상을 사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삶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좋은 수필은 개인적이면서도 너무 사적이지 않은 글”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가야 글이 재미있어요. 하지만 너무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가 돼요. 읽는 사람이 ‘왜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라고 하게 되죠. 그 균형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유 작가의 글들은 옛날이야기를 바로 오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고교 4년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다”며 “그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강해 어렸을 적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계속 곱씹다 보니 기억에 새겨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에 수록된 글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받으러 갈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첫째 딸이 이렇게 물었단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 책의 제목이 ‘나를 찾아가는 직업’이고 부제가 ‘단절된 꿈을 글로 잇는 삶’인 이유다. 그는 “문학은 이제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됐다”며 “앞으로 집밥 같은 따뜻함으로 위로를 주는 수필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