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줄폐업…'연극 메카' 대학로의 눈물

찾는 사람은 없고
코로나로 단체관람 끊기고
넷플릭스에 관객 빼앗겨

거리엔 임대 딱지만
상권 죽고 상가 공실률 급증
동숭로 빌딩 매물 쏟아져
건물 가격도 평균 8.4% 하락
서울 동숭동 대학로 연극가에 지하 소극장을 임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신연수 기자
13일 찾은 대학로(서울 종로구 동숭동)는 더 이상 ‘대한민국 연극 메카’가 아니었다. 연극 공연을 알리는 현수막은 드문드문 내걸렸고, 거리는 한산했다. 이 지역 최대 상권인 혜화역 2번 출구 골목에만 1층이 텅 빈 건물이 6개나 됐다. 한 식당 주인은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되면 사람들이 다시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학로는 아직도 겨울”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연극 애호가들이 전부 넷플릭스로 갈아탄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대학로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붐’이 맞물리면서 연극 공연을 찾는 사람이 급감한 여파다. 공연계에선 연극시장의 큰손인 2030세대가 OTT와 사랑에 빠진 만큼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돼도 ‘대학로 르네상스’는 다시 오기 힘들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건물 가격 8% 하락

1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3개월여 동안 동숭동에서 매매된 상업·업무용 건물은 모두 4건이었다. 이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 연간 거래 건수(3건)를 능가하는 수치다. 대학로 빌딩 매매 건수는 2020년 6건, 2021년 12건으로 매년 두 배씩 늘고 있다.

빌딩 가격이 올라 손바뀜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동숭동에서 거래된 건물의 3.3㎡당 평균 가격은 2019년 9379만원에서 지난해 8595만원으로 8.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울지역 전체 상업용 건물 평균 가격이 3.3㎡당 5934만원에서 7849만원으로 32.3%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대학로 상권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대학로는 안정적인 상권 덕분에 손바뀜이 별로 없었던 지역”이라며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장은 물론 주변 식당, 카페까지 죽으면서 빌딩 매물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현재 혜화역 상권에는 6개의 빌딩이 매물로 나와 있다. 이 중 절반은 소극장에 임대를 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소극장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극단을 직접 갖고 있거나 빌려준 건물주들이 더 이상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것이란 분석이다. 대학로 한 소극장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단체 관람이 끊기면서 관객을 10명도 채우지 못한 공연을 셀 수 없이 열었다”며 “그러다 보니 많은 소극장이 임차료를 못 냈고 건물주는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로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주요 소극장들은 최근 1~2년 새 줄줄이 폐업했다. 3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 대학로 대표 스테디셀러인 ‘죽여주는 이야기’를 올린 삼형제극장이 지난해 떠난 게 대표적인 예다. 2008년 개관한 136석 규모의 극장 라이프시어터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엘림홀, 노을소극장 등도 줄줄이 폐업했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코로나19 직전 150개 안팎이었던 대학로 일대 소극장은 현재 120개 정도로 20% 줄었다”고 말했다.

“‘엔데믹’돼도 상권 회복 힘들 것”

2030세대의 ‘대학로 패싱’은 소극장 폐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람객의 발길이 끊기다 보니 이 일대 식당과 카페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혜화동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1.0%에 달했다. 대학로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1층이 6개월째 공실인 건물도 있다”고 말했다.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대학로 상권이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다시 소극장으로 끌어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 팀장은 “대학로는 공연장 외에 유동인구를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며 “익선동, 을지로, 성수동 등 이른바 젊은 소비층에 인기 있는 상권에 비해 다소 정체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