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대통령실이 국정 통제·지휘 안할 것"

'경제통' 비서실장 내정

정책·예산 정통한 경제관료 출신
盧정부 비서관·MB 정책실장 등
공직생활 33년간 靑 파견 4차례

민간주도 시장·재정 건전성 강조
"당선인과 靑개편 큰 방향 논의"
정치경험 없어 실무형 참모 될 듯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가 13일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인선 배경에 대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일을) 해보라는 당선인의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범준 기자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초대 비서실장에 기용한 것은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과제로 챙기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된 인선이라는 평가다. 김 실장 내정으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등 새 정부 내각과 대통령실 최고위 인사 진용이 모두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 내정자는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 조직과 관련해 큰 방향에 대해서 윤 당선인과 대화를 나눴다”며 “인수위가 검토하는 (청와대) 개편안을 본 뒤 조직과 인선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미래 전략 수립에 집중

김 내정자는 옛 기획예산처 출신으로 국가적인 전략과 기획을 짜고 예산을 관리하는 업무에 강점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실 조직을 슬림화하고 미래 전략 수립에 기능을 집중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과 잘 들어맞는다. 김 내정자도 이날 인사 배경에 대해 “청와대(대통령실)가 국정을 통제하고 지휘·군림하는 측면을 배제하고, 국정을 지원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당선인의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경제부처 출신 관료지만 통상 업무에서 출발한 한 총리 후보자나 금융정책을 주로 다뤘던 추 부총리 후보자와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김 내정자는 청와대 근무 경험이 많다. 33년의 공직생활 기간에 청와대에서 네 차례 7년간 일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선 경제수석, 정책실장 등으로 중용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민간으로 나와 한화생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았고, 약 10년 만에 다시 정부에서 일하게 됐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특별한 정치색이 없어 여야 정치권에서 고루 능력을 인정받았다”며 “특히 노무현, 이명박 정부 청와대 근무 경력을 유심히 봤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민간 주도 시장경제 지향

김 내정자는 정부보다는 민간이 주도해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하다.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 경제 질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1999년 의약분업 정책은 김 내정자가 종종 예로 드는 정책 실패 사례다.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좋은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이해관계자인 의사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에서 의료수가를 과도하게 인상했다. 그 결과 건강보험재정 악화와 같은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의대에 인재가 몰리고 이공대를 기피하는 부작용까지 초래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재정 건전성도 김 내정자가 중요시하는 정책 과제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 장기 금리가 떨어지고 민간 투자가 늘어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사례를 자주 얘기한다. 청와대 재직 당시에도 사석에서 “경제 관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자주 언급했다. 추 부총리 후보자가 주도할 경제정책을 김 내정자가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김 내정자는 꼼꼼하면서도 소탈하고 친화력이 좋아 선·후배의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국회와 정치 경험이 없고 이번 대선에서 캠프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건 단점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요 국정 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보다는 내각을 뒷받침하는 ‘실무형’ 비서실장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임태희 윤 당선인 특별고문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 내정자에 대해 “선거 때 역할을 안 한 분”이라며 “(비서실장직은) 난데없이 이렇게 임명돼서 잘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고 말했다.
좌동욱/김인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