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만들어먹자"…반죽 사는 '홈베이킹족' 늘어난 이유[한경제의 신선한 경제]

오드리 햅번의 대표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주인공 홀리가 아침으로 크로와상과 커피 한 잔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쇼윈도 앞에서 빵을 베어물며 신분 상승을 꿈꾸는 그녀. 시골 농장에서 상경한 홀리에게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은 적당한 여유를 준다.

하지만 지금 홀리의 식단을 따라했다간 아침 한 끼에 6000원이 넘는 돈을 써야할 수도 있다. 주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크로와상은 한 개에 2000원 정도고,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은 4500원 선이다. 배고파서 빵을 여러 개 집는 순간 1만원을 훌쩍 넘긴다. 이처럼 국제 곡물 가격 인상 등의 요인으로 완제품 빵 가격이 크게 오르자 집에서 빵을 만들어 먹는 ‘홈베이킹’족이 늘었다. 반죽을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적용된 것이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푸드의 1분기 가정용 냉동생지 판매량은 작년 4분기 대비 51% 증가했다. 온라인으로 유통된 냉동생지는 판매량이 69% 늘었다.

마켓컬리에서도 올 1분기 냉동 생지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8% 늘었고, SPC는 작년 한 해 냉동생지 판매액이 전년 대비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냉동생지는 성형(반죽의 가스를 빼고 빵의 모양을 만드는 단계)을 마친 빵 반죽을 급속 동결 시킨 제품이다. ‘빵 모양을 갖춘 반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냉동 상태로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 와플팬에 넣어 구우면 갓 구운 빵과 유사한 식감의 빵을 맛볼 수 있다. 크로와상 뿐만 아니라 스콘, 바게트, 쿠키 등 다양한 빵·제과류를 만들어먹을 수 있다.

빵 가격이 부담스러워진 소비자들이 ‘직접 빵을 만들어 먹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전세계 곡물시장을 덮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세계 밀 수출량 2위인 미국에서 작년부터 밀 생산량이 급감한데다가 5위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치르면서 밀가루 가격이 급등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초 톤(t) 당 279달러에 거래됐던 국제 밀 가격은 12일(현지시간) 4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 결과 파리바게트는 지난 2월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6.7% 올렸고 뚜레주르도 인상을 검토중이다.
급등한 국제 밀 가격(자료 : 농촌경제연구원)
이런 가운데 생지를 구매해 직접 조리하면 가격은 완제품 빵을 사 먹을 때보다 저렴해진다. 신세계푸드의 크로와상 냉동생지 1개 가격은 일반 빵집에서 판매하는 완제품의 6분의 1 수준이다. 에어프라이어, 오븐 등 간편 조리가전 보급이 늘어난 것도 홈베이킹 문화 확산에 영향을 줬다.

컬리 관계자는 “4분기에는 연말 홈파티 수요로 냉동 생지류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데 올 1분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양이 판매됐다”며 “에어프라이어에 넣기 좋은 크기인 미니 크로와상의 인기가 유독 높았다”고 전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