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부커상 최종 후보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 "다음은 문어 이야기"

정보라·안톤 허 기자 간담회
사진=연합뉴스
"문학은 재밌으니까요."

14일 정보라 작가와 안톤 허 번역가는 각각 소설을 쓰고 문학 번역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단편소설집 <저주 토끼>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걸 기념해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다. 국내외에서 갑작스레 쏟아진 관심에도 두 사람은 '소설을 읽고 쓰는 일 자체의 재미'를 말했다. 답변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읽고 쓰는 게 재밌어서 벌어진 일이라는 듯이.정 작가가 쓰고 허 번역가가 영어로 옮긴 <저주 토끼>는 저주, 괴물, 유령 등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단편소설 10편을 담고 있다. 부커재단은 <저주토끼>에 대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는 <저주 토끼>를 비롯해 총 6편이 꼽혔다. 수상작 발표일은 5월 26일이다.

2017년 출간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저주 토끼>는 해외 판권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국내외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정 작가는 "난생 처음 이런 관심을 받게 돼 얼떨떨하다"며 "독자들에게는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저주를 담은 토끼가 온 집안과 사람마저 갉아먹는 이야기,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나오는 이야기…. <저주 토끼>는 기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 작가는 "인간의 쓸쓸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괴물에게 납치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자라나는 소년을 다룬 단편소설 '흉터'가 대표적이다."'부정의한 세상에서 저주로 나쁜 놈을 망하게 했다'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해도 피해자들이 모든 걸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이미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세상은 늘 어느 정도 부조리하고 부정의하니까요. 그런 부분은 (피해자들이) 계속 안고 가게 되는 흉터라고 생각했어요."

허 번역가는 "<저주 토끼>의 문학성, 그 중에서도 문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번역을 먼저 제안했다"고 했다. 그가 꼽은 특히 인상적인 구절은 단편 '몸하다' 속 주인공의 출산 장면. "진통의 파도가 밀려왔다"로 시작되는 대목이다. 허 번역가는 "어떻게 보면 폭력적인 출산 장면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꿈 같은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라며 "그 느낌을 살리고 싶어 여러 번 문장을 퇴고했고 그 번역에 도달했을 때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저주 토끼>에 대한 관심은 두 사람이 쓰고 옮길 다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정 작가는 "해양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는데 문어는 썼고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새로운 소설을 쓸 예정"이라며 "포항 남자를 만나 포항으로 시집을 갔는데 제사상에 저만한 문어가 오르는 게 너무 충격적이라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두 편의 앤솔로지(특정 주제에 대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묶은 책) 외 <저주 토끼>를 출간한 아작 출판사에서도 새로운 단편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이다.러시아 문학 번역가이기도 한 정 작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소설도 구상 중일까. 정 작가는 "불행히도 고통과 슬픔이 세상에 널려 있다"며 "어떻게 써야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 당장 전쟁 이야기를 소설로 쓸 거 같지는 않다"고 했다.

허 번역가는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걸 스스로 미션으로 삼고 있다"며 "외국 출판계 사람들 만나면 '한국 소설은 이성애자 중년 남성만 쓰냐'고 할 정도로 특정 작가들에 번역이 쏠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문단에 이렇게 훌륭한 여성 작가들과 SF 작품이 많다는 것을, 한국 문학이 풍요롭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평가받는다. 최종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봐도 될까. 정 작가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지금 쏟아지는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낯설다는 것이다. 허 번역가는 "후보에 오른 번역가들이 번역뿐 아니라 해당 작품을 인정받기 위해 해왔던 노력과 고생을 너무 잘 안다"며 "어느 분이 상을 받아도 제가 받은 것처럼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