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파이프라인 재발견…길리어드가 버린 약, GSK 2조원에 인수

GSK, JAK 억제제 보유 시에라 사들여
GSK가 시에라온콜로지를 품에 안았다. 'JAK' 억제제 후보물질(파이프라인) 모멜로티닙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모멜로티닙은 2013년 길리어드가 인수했던 YM바이오사이언시스의 파이프라인이었다. 이후 시에라는 300만달러에 이 후보물질을 확보했다. 좌절을 겪었던 파이프라인이 19억달러(약 2조3300억원) '딜'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GSK는 시에라를 19억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지난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GSK가 시에라 인수 과정에서 주목했던 파이프라인은 임상 3상 단계인 모멜로티닙이다. 'JAK1' 'JAK2' 'ACVR1' 억제제 계열인 이 치료제는 세계 3번째 골수섬유증 후보물질로 꼽힌다. 기존 치료제를 사용할 때 생기기 쉬운 빈혈 부작용을 줄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라는 올 2분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모멜로티닙의 시판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모멜로티닙이 매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길리어드는 2012년 모멜로티닙을 보유한 YM바이오사이언스를 5억1000만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8년 후기 임상에서 실패한 뒤 이 계약은 깨졌고, 시에라는 300만달러에 이 파이프라인을 인수했다.

모멜로티닙을 인수한 뒤 시에라는 임상 3상에 집중했다. 신약 임상에만 '올인'하면서 시에라의 주가는 한때 1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GSK가 시에라를 인수하면서 평가한 주가는 주당 55달러다.

다국적 제약사가 파이프라인 개발을 포기한 뒤 대형 제약사에서 재인수하는 일은 미국에서 비일비재하다. 화이자는 2018년 어레이바이오파마를 110억달러에 인수했다. 이 회사의 주요 파이프라인은 노바티스로부터 매입한 것이다.MSD는 2014년 큐비스트를 19억달러에 인수했다. 앞서 큐비스트은 일라이릴리와 함께 협약을 맺고 주요 파이프라인을 개발했다. GSK가 2018년 50억달러에 품에 안은 테사로, 일라이릴리가 2018년 16억달러에 인수한 아모 등은 모두 이전에 MSD와 공동개발 등 딜이 있던 기업이다.

최근 국내서도 이런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2019년 국내 시판이 중단됐지만 최근 싱가포르 제약사 주니퍼바이오로직스에 기술수출됐다. 앞서 먼디파마와 맺었던 판권 계약은 해지 수순을 걷게 됐다.

한미약품도 얀센에 기술수출했다가 반환된 비만·당뇨 치료 후보물질 'HM12525A'을 MSD에 재이전했다. 최대 1조원이 넘는 계약이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투자자들은 제약사가 신약 파이프라인의 개발을 중단하거나 다국적 제약사 등에 기술수출했다가 반환되면 실패로 여긴다. 하지만 신약 개발 성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를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등 해외 국가보다 신약 개발 업력이 길지 않는 '걸음마 단계'다. 이 때문에 넘어지는 게 일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 중단 등이 존폐를 결정하는 '절대 이슈'가 되면 기업들은 두려움 탓에 '실패'를 선언할 수 없게 된다. 죽은 파이프라인을 계속 끌고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만 쓰게 된다. 해외 주식 시장에선 상황에 따라 파이프라인 중단 선언을 호재로도 인식하는 이유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