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총기 등 물리력 사용 기피 원인?…"감찰 불이익 등 때문"

'흉기난동 부실 대응' 논란 관련 인천지역 경찰관들 대상 연구

흉기 난동 등 위험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총기 등 물리력 사용을 기피하는 이유는 민형사상 책임, 감찰 불이익 등에 따른 심리적 위축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7일 황정용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조교수와 장승수 한세대 미래지식교육원 범죄수사학과 겸임교수는 최근 경찰학연구에 실린 '경찰의 물리력 수단 사용 기피 원인에 관한 분석'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올해 1월 2일까지 '흉기난동 부실 대응' 논란이 불거진 인천지역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관 26명을 대상으로 전화, 질문지로 심층 면접을 했다.

조사 결과 연구에 참여한 대다수 경찰관은 현장에서 물리력을 사용했을 때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한 경찰관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린 사람에게 테이저건을 사용한 사안에 대해 일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이런 사례는 공권력을 취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겨도 수년간 심적 고통으로 일상이 무너진 다른 직원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상 징계를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감찰 조사도 권총이나 전기충격기 등 장비 사용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한 응답자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집행에 대해서도 언론보도만 나면 감찰 조사를 받는 데다가, 상급 기관에 여러 차례 불려가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밝혔다.

언론의 비난 보도, 민원, 공권력 사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 등도 심리적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물리력 수단을 쓴 뒤 문제가 되면 조직이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인식과 현장 경찰관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상당수 연구 대상자들은 "교육 훈련을 받지 않아서 물리력 사용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교육 훈련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형사 책임을 감면하는 면책 조항 현실화,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경찰관에 대한 법률 지원 확대, 복무 담당 경무과에서 1차 조사 이후 감찰 부서에 통보 방식 등을 제안했다.

또 위계적인 조직 문화는 적극적인 경찰 활동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흉기 난동자 등을 제압하기 위해 과감히 장비 사용을 하도록 하려면 유연한 조직문화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물리력 수단 사용을 기피하는 문화가 조직 내에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은 부정하지 않으나, 그 원인을 개인의 소극성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며 "현장 경찰관의 장비 사용 기피 원인을 직원 입장에서 탐색한 연구는 그동안 없었는데 이 연구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흉기난동 부실 대응' 논란은 지난해 11월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40대 남성이 아래층에 살던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를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2명이 범행을 제지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흉기에 찔린 여성은 목을 찔려 의식을 잃었으며 뇌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다.

사건이 알려지자 국민들 사이에서 공분이 일었고 경찰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성실 의무 위반 등으로 A 전 경위와 B 순경을 각각 해임했다. 피해 여성의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1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