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도 응시한 국힘 '공천 자격시험'…4400명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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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PPAT 풀어보니…17일 오전 7시30분 서울 신정동 목동고의 한 교실. 흰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5㎝ 정도 되는 문서철을 머리를 맞대며 보고 있었다. 청년이 “공부 많이 하셨어요?”라고 묻자 중년 남성은 “공직선거법 부분이 너무 어려운데…”라고 했다. 교실 맨 앞에선 중년 여성이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전화로 동영상 강의를 시청했다.
당헌당규부터 대북관 묻는 질문도
이날 목동고에서 치러진 시험은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로 불리는PPAT. 국민의힘이 6·1 지방선거 광역·기초의원 출마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자격시험이다. 선거 공천에 자격시험을 도입한 것은 정당 사상 처음이다. 정치부로 발령 받은 지 고작 보름 지난 기자도 이날 PPAT를 치렀다. 별도 마련된 고사장에선 기자 10여명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함께 시험을 봤다. PPAT는 이 대표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시험은 오전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문제는 객관식 ‘4지선다형'으로 30개가 나왔다.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감독관 두 명이 커닝 여부 등을 감시했다.
문제를 보기 전까지 PPAT를 그저 ‘형식적인 시험’으로 생각했다. 그 생각은 시험지를 펼친 지 5분 만에 사라졌다. 당헌당규에 따른 책임당원 요건부터 당원협의회 규정까지 자세한 내용이 문제에 담겼다. 총 다섯 문제인 공직선거법 부분은 상식만으로 풀기엔 까다로운 편이었다. 광역·기초의원이 지녀야 할 역량과 연관성이 적은 문항도 많았다. 북한 체제나 북한 인권정책, 한미동맹을 묻는 문제가 그랬다. 일부 고사장에서는 “지방 행정을 이끌 역량과 대북관이 무슨 상관이냐”는 볼멘소리도 들렸다. 당 강령에 버젓이 담긴 ‘시장경제’를 묻는 문항은 1개 뿐이었다.
일부 연령대가 높은 응시자는 OMR 답안지를 적는 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서울시의원에 출마해 이날 PPAT를 치른 A씨는 “어르신들이 OMR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름 적을 때부터 10명 가까운 분들이 답안지를 교체했다”며 “글씨가 작아서 문제 풀기 힘들었다는 얘기도 들렸다”고 전했다. 동작구의원 선거에 뛰어든 B씨는 “시험 끝나자 마자 문제가 어렵다는 불만이 많았다”며 “논증추론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시험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처음 치러지는 시험이다 보니 난도나 과목이 적절했는지 평가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의원에 도전하는 당원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철학이 무엇이고 다른 당과 차별화되는 것이 무엇인지 숙지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광역·기초의원 검증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에 (PPAT가)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PPAT가 치러진 목동고에는 800명이 모여들었다. 고사장 앞에서는 이준석 대표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시험 잘보라”며 응시자를 응원했다.
PPAT는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 고사장에서 시행됐다. 광역·기초의원 후보자 4400여명이 시험을 응시했다. 최연소 응시자는 20세, 최고령 응시자는 81세다. 지역구에 출마한 광역·기초의원은 PPAT 점수에 비례해 공천 평가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비례대표의 경우 광역의원은 70점 이상, 기초의원은 60점 이상을 받아야 공천을 받을 수 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