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8%대 인상' 내놓고도…"직원 뺏길라" 눈치보는 삼성·하이닉스

IT기업 인재 확보전…연봉 두 자릿수 인상은 예사

"경쟁사 올려주니 우리도"
반도체·AI·DX시장 성장으로
엔지니어·개발자 쟁탈전 치열
카카오 15%·LG 엔솔 10%↑

글로벌 공룡들과 구인 전쟁
업종 경계 무너지며 사업 확장
월마트·BMW도 IT인재 영입
기업, 인건비 부담에 실적 우려
사진=연합뉴스
15%(카카오), 14.3%(DB하이텍), 10%(네이버), 10%(LG에너지솔루션)….

지난 두 달간 반도체·정보기술(IT) 분야 기업들이 내놓은 올해 연봉 인상률이다. 이들 업종 기업에선 인플레이션율을 조금 웃도는 4~5% 인상률은 이제 옛말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인재 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요즘은 ‘묻고 더블로 가’가 예삿일”이라며 “경쟁사 인사담당자를 만나면 ‘먼저 인상률을 정해달라’는 말을 인삿말처럼 할 정도”라고 했다.

IT 연봉 잇달아 수직 상승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그간 매년 2~3월 그해 연봉 인상률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이달 중순까지 인상률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삼성그룹의 전자 계열사인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인상률 발표도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주로 4월 말~5월 초 노사 간 임금 협상에 들어갔던 SK하이닉스도 아직 회사 측 안을 못 정했다.

두 기업이 섣불리 숫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엔 이유가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조금이라도 높은 연봉을 좇아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작년 말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의 산업기술인력 수급실태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에서 직원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경쟁사의 스카우트’라고 답한 비율이 9.2%로, 국내 12대 주력 산업 분야 중 가장 높았다. 전체 산업 평균 응답률(4.4%)의 두 배가 넘는다.이 같은 분위기에 가전·디스플레이·배터리 기업 연봉도 치솟고 있다. 생산 공정이 비슷해 주요 인력의 반도체업 전향 비율이 높아서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연봉을 전년 대비 8%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1.9% 대비 4배 이상 뛰었다. LG전자는 작년 9%에 이어 올해 8.2% 올리기로 했다.

인터넷·소프트웨어 분야 기업도 비슷한 분위기다. 카카오는 올해 임직원 연봉 총액을 전년 대비 15% 늘린다. 작년 증가폭(6%)의 두 배 이상이다. 네이버는 10% 인상한다. 지난해 인상률은 7%, 2020년은 5%였다. LG CNS도 10% 올린다. 1987년 출범 이후 첫 두 자릿수 인상이다.

“이젠 해외 기업과도 구인 경쟁”

올해 ‘도미노 연봉 인상’은 예년보다 더욱 심하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분야 인력 쟁탈전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확산한 영향이다. 이들 업종 기업은 업황이 좋아지면서 인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 산업에 진입하는 ‘글로벌 공룡’과도 경쟁해야 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유통기업 월마트와 완성차 기업 BMW 등은 AI 사업을 키우고 있다.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는 작년 말 자동차업계 최초로 ‘소프트웨어(SW) 데이’를 열어 SW를 새 먹거리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직고용한 개발자만 5000명이 넘는다.최근 공세를 올리고 있는 중국 기업도 국내 기업 인재들을 노리고 있다. 한 반도체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4~5% 인상폭도 크다고 보는 다른 분야 인사담당자들은 ‘삼성·SK가 물을 흐린다’고 하지만, 이는 정말 속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우린 이제 글로벌 빅테크와 연봉·이름값 경쟁을 해야 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한 IT 기업 관계자는 “해외 대기업은 물론이고 최근 대규모 투자를 끌어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도 인력 확보전에 가세했다”며 “주요 직군에 대해선 비자 발급도 쉬워져 연봉을 경쟁사들에 맞춰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치킨게임 언제까지…” 우려도

일각에선 ‘네가 올리니 나도 올린다’는 임금 치킨게임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 실적이 좋을 때는 급격한 연봉 인상이 큰 부담이 되지 않지만, 업황이 바뀌면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올린 임금은 경영 상황이 나빠졌다고 내리기도 쉽지 않다.

급증한 인건비가 영업이익 등 기업 실적에 부담을 주는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작년 경쟁적으로 연봉을 큰 폭으로 올렸던 게임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크래프톤이 개발자는 2000만원, 비개발자는 1500만원씩 임금을 올리자 넥슨과 넷마블은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씩 인상했다. 엔씨소프트는 개발자 1300만원, 비개발자 1000만원을 올렸다. 그 여파는 ‘실적 쇼크’로 이어졌다. 시가총액 기준 5대 게임사 영업이익률은 2020년 27%에서 작년 16%로 곤두박질쳤다.

선한결/곽용희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