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기숙사 생활 의무화…교류·토론이 생각의 지평 넓혀줄 것"

서울대 오세정 총장

방시혁·이해진·황동혁처럼 미지 영역에 도전하는 인재 육성
서울대 졸업생, 월급 받는 사람 아닌 '월급 주는 사람' 돼야
창의적 인재 위해 입시자율 필요…학생 60% 복수전공 추진

대담=이관우 사회부장
“서울대는 기득권 사회에 들어가려는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 아닙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미학 91),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컴퓨터공학 86), 황동혁 영화감독(언론정보학 90)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을 더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교수 지시를 잘 따르고 암기를 잘하는 학생들이 필요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학교도, 교육도, 전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오 총장은 올해로 취임 4년차를 맞았다.오 총장은 전교생이 1학기 이상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RC(residential college·거주형 대학)’를 관악캠퍼스에 곧 도입할 계획이다. 이르면 올해 2학기나 내년 1학기에 시범운영할 예정이다. 오 총장은 “교수나 선배들이 짜놓은 세계에 바로 들어가기보다 다른 학생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토론해야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인재상을 다양화하기 위해 교육부 입시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육부가 소수의 이탈자를 잡기 위해 정시 비율을 확대하는 등 입시 규제를 강화하다 보니 대학들은 획일적인 줄 세우기 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입시 자율권부터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가 커지고 있다.“대학 교육의 목표는 지식 전수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토론하는 경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울대가 작년 선제적으로 대면수업 재개를 추진한 것입니다. 하지만 비대면 수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술이 많이 축적된 만큼 앞으로 이 기술들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인공지능(AI)·빅데이터 과목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온라인을 활용하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강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외 대학의 우수한 강의를 서울대에서 개설할 수도 있고요.”

▷서울대의 미래 인재상은 어떤 모습인가.

“서울대 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많은 혜택을 받습니다. 그것을 늘 염두에 두고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월급을 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남들이 안 해본 일에 도전하는 사람, 모든 분야에서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육성해야 합니다. 그런 인재를 뽑고 싶지만 현행 입시제도 안에서는 주어진 지식을 잘 체득하는 사람을 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학생 선발권을 준다면 어떤 방식을 도입하고 싶은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 방식을 도입해보고 싶습니다. 주어진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주관식이 들어가야 합니다. 서울대가 변화하기 시작하면 국내 다른 대학들도 바꾸기 시작할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입시도 서울대의 중요한 사회적 책무 중 하나입니다. 이미 사회와 기업이 다양한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학교 시스템과 입시 방식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수밖에 없어요.”

▷로스쿨, 의대 편입 준비생이 넘친다는 비판도 많다.“정말 안타깝습니다. 지금 한국이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분야는 로스쿨이나 의대가 아닙니다. BTS와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양성이 사회적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물론 법학을 공부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진로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RC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10년간 획일적인 교육을 받아 왔으니 거기서 벗어나 다양한 또래 학생과 토론하며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유전공학부에서도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대학이 위기에 빠져 있다.

“지금 추세로 가면 2040년에는 전국의 모든 지방대학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수도권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대학을 수도권에만 남길 수도 없습니다. 서울대도 사회적 책임을 고려할 때 학부 정원을 줄여서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부에서 정원을 줄이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해주고 등록금 규제도 풀어줘야 합니다.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스스로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6%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9%에 크게 못 미칩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 제정 등을 통해 고등교육 예산의 절대 규모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울대 10개 설립 방안이 제기됐다.

“여태껏 평준화해서 서울대 없애자고 했던 말보다 훨씬 건설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수도권 대학으로 가는 길이 너무 좁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서울로 몰리는 건 그만큼 일자리 등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역에 많은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좋은 사례입니다. 기업이 성장하니 살기 좋아지고, 지역 대학의 위상이 올라가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납니다. 지역을 살리는 게 대학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좋은 대학이 많아져서 경쟁이 일어나면 서울대도 더 발전할 기회가 생깁니다. 서울대가 여러 개 생기는 것은 배 아플 일이 아닙니다. 서울대에도, 국가에도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교육부 통폐합론이 여전하다.

“부처 통폐합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교육과학기술부 시절과 지금 교육부를 비교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중요한 건 하는 일을 바꾸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규제 부서입니다. 모든 업무가 규제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를 서비스 중심으로 바꿔서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부가 돼야 합니다.”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다.

“재임 기간 가장 신경 쓴 점은 학생들의 선택권 확대입니다. 그동안 대학들은 공급자 위주의 교육을 해 왔습니다. 학생들이 뒤늦게 적성을 발견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복수전공 부전공을 많이 확대했습니다. 현재 전체 학생 중 30%는 복수전공 또는 부전공을 하고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이를 50~60% 수준까지 높일 계획입니다. 학생들이 어느 전공으로 서울대를 들어오더라도 다른 전공과 융복합이 가능해지는 거죠. 컴퓨터공학과 등 서울대 모든 학과는 원래 3학년 정원의 1배까지만 복수·부전공 학생을 뽑을 수 있었는데 이를 정원의 2배까지 선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습니다.”

■ 오세정은…△1953년 서울 출생
△1975년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1981년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석·박사
△1984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1998년 한국과학상 수상
△1999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문위원
△2003년 한국과학문화재단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 선정
△2011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바른미래당)
△2018년 바른미래정책연구원 원장
△2019년~ 서울대 제27대 총장

정리=최만수/이소현 기자, 사진=허문찬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