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약자배당 안해도 돼"…보험사 손 들어준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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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배당은 IFRS4적용, 연간 수조원 아끼는 보험사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사의 유배당 보험 상품 가입자에 대한 계약자 배당 때 현행 회계기준(IFRS4)을 적용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보험 부채를 시가평가하는 새 국제보험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 유배당 보험 상품에서 회계상 이익이 발생해 생보사의 배당 부담이 갑자기 커지게되자 이를 막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되면 소비자들은 연간 조단위 배당금을 받을 기회가 사라지게 돼 논란이 예상된다.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이 첫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평가다.
보험3사 유배당 계약 435만 건…'사라진 배당금'
"집단소송 등 보험가입자 반발 예상 돼"
◆계약자 배당은 기존 회계제도 적용
1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유배당 보험 상품 가입자에 대한 계약자 배당을 실시할 때 현행 회계기준(IFRS4)을 적용하기로 결정하고, 금융위에 승인을 요청했다. IFRS17 도입에 따른 감독규정 개정 현안을 다룬 ‘법규개정 태스크포스팀(TF)’을 통해 대형 보험사에 유리하도록 새 규정을 만들면서다. IFRS17은 보험부채의 시가평가를 골자로 한 새로운 보험회계기준으로, 내년부터 국내 모든 보험사에 적용된다.유배당 상품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 일부를 보험사가 운용해 그 투자 수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과거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대형 보험사 위주로 유배당 상품을 많이 팔았다. 유배당 보험은 통상 계약자에게 연 6%대 이자를 준다. 그런데 생보사들이 계약자 돈을 굴려 버는 운용수익은 연 4~5%에 그친다. 생보사 입장에선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현행 회계기준에서는 유배당 상품에 대한 계약자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하지만 IFRS17이 도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보험사의 운용수익은 연 4~5%로 지금과 동일한데 계약자에게 줘야할 이자는 시가평가 원칙에 따라 현 금리 수준을 반영한 연 3% 안팎으로 낮아진다. 결과적으로 생보사들은 유배당 보험에서 회계상 이익을 보게 된다. 또 새 회계제도가 장래이익을 부채로 쌓은 뒤 미래이익을 순차적으로 인식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도 변수다. 보험사는 부채 증가에 따른 자본확충 부담이 생기지만, 보험사 상품 구조에 따라 손익 구조는 오히려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배당 상품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이익금을 배당해야하는 이슈가 생기게 된다. 문제는 새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단지 회계상 이익이 늘어나는 것일뿐 실제 돈을 더 버는 것이 아닌데도 생보사들이 계약자에게 배당해야할 금액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보험업계 추정에 따르면 대형사들의 유배당 상품에 배당해야 하는 금액은 이익금의 약 30~40%에 달한다. 국내 1위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의 경우 작년 영업이익이 1조7000억원임을 감안할 때 약 6000억원을 계약자 배당으로 써야 한다는 의미다. IFRS17에서 손익이 더 좋아질 경우 배당금은 더 늘어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회계제도 변경에 따라 계약자 배당금만 연간 1조~2조원가 갑자기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회계변경으로 수조원 비용 증가는 안돼”
제도 변경여부에 따라 수조원의 돈의 행방이 달려 있다보니 이해당사자 간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대형 생보사들은 회계기준 변경만으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게되면 경영상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과거에 이미 회계적 판단을 끝낸 계약에 대해 회계제도 변경을 이유로 배당을 늘리는건 ‘이중배당’이자, 기존 유배당 보험 계약자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입장이다.하지만 새 회계제도 적용시 이익을 볼 수 있는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배당 보험을 거의 팔지 않은 소형 생보사도 ‘대형사 봐주기 아니냐’고 지적한다. 소형사들은 유배당 상품이 거의 없어 배당이슈가 생기지 않고, 회계장부 이중 작성과 이에 따른 이중 감사 부담만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대형 생보 3사의 유배당 계약자는 삼성생명 210만 건, 한화생명 143만 건, 교보생명 82만 건 등 435만 건에 달하며 새 회계기준 적용시 이들 3사가 지급해야할 배당액만 연간 1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집단소송 등에 나설 수 있는 이슈”라며 “금융위의 최종 판단에 따라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지훈/김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