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이라도 '러시아 대게' 안 먹고…10% 비싸도 '착한제품'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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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에서 '가치소비'로GS리테일의 슈퍼마켓 ‘GS더프레시’에서는 샤인 머스캣(포도)과 킹스베리(딸기) 등 신품종 과일이나 수입 과일이 부사 사과, 캠벨 포도 같은 ‘일반 과일’보다 더 많이 팔린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부터 본격화했다.
명품·외제차에 펑펑 쓰지 않고
'나에게 가치 있는 소비' 추구
"우크라 침공한 러 제품 불매"
2030 "ESG 기업 선호" 65%
'지갑 두툼' 힘 세진 소비자
상위 20% 월소득 948만원
"기업이 정한 일방적인 룰 거부"
제품개발 참여로 혁신 이끌어
2019년 48.7%였던 이른바 ‘이색 과일’의 매출 구성비는 지난해 60.4%로 치솟았다. ‘아무리 비싼 과일이라도 내가 만족스럽다면 얼마든 사 먹을 수 있다’는 소비 심리의 발로라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신선식품 분야의 대표적인 ‘미코노미’ 사례로 꼽힌다.
‘의식 있는’ 소비자들
나(me)와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미코노미는 2010년대만 하더라도 ‘이유 불문하고 나를 위해 아낌없이 쓰는 소비행위’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2030세대가 소득 수준을 생각지 않고 값비싼 명품이나 수입차를 사들이는 게 전형인 것처럼 인식됐다.하지만 이런 개념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변화했다. 단순히 펑펑 쓰기보다 ‘나에게 가치 있는 소비에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의미 없는 소비는 아무리 값이 싸도 하지 않는다’는 움직임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국이 주요 도시를 봉쇄하자 러시아산 대게가 지난달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결과 지난달 말~이달 초 ‘반값 대게’가 속출했다.이때 상당수 소비자는 대게 파티를 즐겼지만, 한편에선 2030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러시아 대게를 먹는 건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대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의식 변화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비자 380명을 대상으로 이달 초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4.5%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은 더 비싸더라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 중 4.2%는 ‘경쟁사의 동일 제품과 비교해 가격이 10% 이상 비싸더라도 구매 의사가 있다’고 했다.
소득 증대가 가능케 한 가치소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소비 패턴이 고착화한 데는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진 현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직원 연봉을 연 10% 이상 올려주고, 그로 인해 자산이 축적되면서 소비하는 데 배짱을 부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신한은행이 최근 발간한 ‘2022 보통 사람 금융 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0~64세 경제활동 가구의 월평균 총소득은 493만원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소득과 자산이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5구간(상위 20%) 가구의 지난해 총소득은 948만원으로 2020년(895만원)에 비해 5.9% 늘었다. 이들의 평균 보유 자산은 10억3510만원으로 전년(9억924만원)보다 1억2586만원 급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비싼 제품에 지갑을 과감하게 여는 것을 넘어 소비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품 혁신도 이끌어
소비 패턴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유통업계와 필수소비재 제조 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새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면 언제든 시장에서 낙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이어질 것”(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게 이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팔도가 제품 중량을 기존 제품(115g)보다 1.2배 늘린 ‘팔도비빔면컵 1.2(138g)’를 올해 초 선보인 것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한 개는 양이 적고 두 개는 많다”는 ‘라면 마니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개발한 상품이다.농심이 최근 내놓은 ‘카구리’도 그렇다. 이는 ‘카레’와 ‘너구리’를 합친 라면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진 조리법을 제품 개발에 그대로 활용했다.
보수적인 문화로 유명한 식품업계에 혁신을 가져온 긍정적 사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에 스토리와 가치까지 담아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과 제품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