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사전투표 44일만 '불명예' 퇴진…쇄신안 맞물려 주목

임기 2년4개월 남겨놓고 사의…정권교체 직전 떠밀리듯 '뒷북 사퇴' 비판도
쇄신안 내놓은 선관위,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신뢰 회복 시급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8일 "대선 사전투표 관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임기를 2년 4개월 남기고 돌연 사의를 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위원장 퇴진이 중앙선관위의 자체 쇄신안 마련과 맞물리면서 선관위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적인 불신에서 벗어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노 위원장이 사전투표 대혼란 사태 직후 사의를 표하는 것이 더 책임지는 자세였다며 '뒷북 사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노 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선관위원 회의 말미에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혔다. 이날 회의는 대선 사전투표 부실관리 사태 수습을 위해 꾸려진 '선거관리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 쇄신안 보고를 받기 위한 자리였다.

한 선관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늦게까지 이어진 회의 마지막에 노 위원장이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면서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고 전했다.

노 위원장의 사의 표명은 앞서 지난달 5일 확진·격리자 대선 사전투표 현장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로 불리는 극심한 혼란상이 벌어진 이후 44일만이다. 현직 대법관으로 비상근인 노 위원장은 국민의힘 등 정치권과 사회 각계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위원장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달 17일에는 선관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목전에 다가온 지방선거를 더는 흔들림 없이 준비·관리하기 위해서는 위원장으로서 (거취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최소한 지방선거까지는 위원장직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졌다.

현직 대법관인 노 위원장은 지난 2020년 11월 취임했으며 관례상 대법관 임기인 2024년 8월까지 위원장을 맡게 돼 있다다. 이와 관련, 노 위원장이 이미 선관위 수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오래 전 굳혔고 '시기'만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노 위원장은 이날 회의 후 선관위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과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면서 "지방선거 준비 때문에 사퇴를 미루고 있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부 유튜버들이 매일 집 앞에 찾아와 시위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인 고충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날은 혁신위가 사전투표 관리부실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담은 자체 쇄신안을 마련해 보고한 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선관위는 이번 사전투표 사태에서 얻은 '소쿠리 투표'의 오명을 털고 신뢰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국민적 불신 속에서 투표 사무 지원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선관위가 6·1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구심 어린 시선이 많다.

선관위로서는 논란의 중심에 섰던 노 위원장이 퇴진하면서 정치적 부담을 한결 덜었다.

다만 혁신위 쇄신안을 바탕으로 신뢰 회복과 지방선거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 선관위가 어떻게 쇄신을 단행할 지 주목된다.

노 위원장은 조만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직접 사의를 표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원 임명시 대법원장 지명 몫이었기 때문이다.

노 위원장 퇴진으로 선거 공정관리를 담당하는 선관위원 구성에도 어떠한 영향이 있을지도 관심이다.

임기 6년인 선관위원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으로 이뤄진다.

대법원장이 현직 대법관 중 1명을 후임 선관위원으로 지명해야 하는데 정권교체 직전이라는 점에서 미묘한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가 최근 김필곤 새 선관위원 후보를 지명하면서 사실상 국회 몫 1명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당분간 노 위원장의 후임 선관위원인 대법원장 몫 1명까지 포함해 2명이 공석인 상태로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선관위는 노 위원장 사퇴 배경에 대해 "노 위원장은 선관위원과 직원 모두 선거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조직이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중앙선관위원 후보자가 새로 임명되는 등 지선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