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출신 '전설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별세, 향년 7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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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위의 수도사’ ‘은둔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린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라두 루푸가 별세했다. 향년 77세.
루마니아 에네스쿠 국제 페스티벌과 루푸의 에이전트는 오랜 지병을 앓아온 그가 지난 17일 저녁(현지 시간) 스위스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1945년 루마니아 갈라티에서 태어난 루푸는 6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2세인 1957년에 고국에서 열린 데뷔 리사이틀에서 자작곡을 연주하며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낸 이래 전설적인 교육자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디누 리파티의 스승이었던 플로리카 무지체스쿠와 첼라 델라브란체아 등을 사사했다. 1963년 장학금으로 모스크바음악원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했고, 1966년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와 이듬해 루마니아 에네스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1969년 영국 리즈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런던 무대에서 첫 연주회를 가져 격찬을 받았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 연주 활동을 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루푸는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 19세기 독일-오스트리아계 작곡가들에 대한 해석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 작곡가인 야나체크와 버르토크의 연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따뜻하고도 자연스러운 음색과 사색적이며 신비로운 음악 스타일로 ‘피아노 위의 수도사’로 불리기도 했다.루푸는 뛰어난 연주 실력만큼이나 '은둔자적 성향'으로도 유명했다. 수십 년 동안 언론 인터뷰나 외부 활동을 철저히 배제하며 건반에만 집중해왔다. 게다가 공연장에서 그의 무대 매너는 투박하기까지 해 괴짜로 불리기도 했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무대에 서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연주에 앞서 건반의 무게를 일일이 지정할 만큼 까탈스러웠고, 의자도 통상적인 피아노 벤치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요구했다.
라두 루푸는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많은 음악가의 존경을 받았다. 조성진은 루푸를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특히 루푸의 슈베르트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루푸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던 정경화에게 부탁해 그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조성진은 예전에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루푸는) 프레이징이나 음악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실제 공연을 몇 번 봤는데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며 “하늘에서 신이 치고 있는 듯했다”고 말했다.
루푸는 2012년 11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와 협연으로 국내 클래식 팬들과 만났다. 그의 유일한 내한 공연이었다. 당시 독주회에 참석했던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탐미적인 음색에 집착했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음유시인”이라며 “어느 피아니스트도 낼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수준 높은 음색들을 들려줬다”고 회고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루마니아 에네스쿠 국제 페스티벌과 루푸의 에이전트는 오랜 지병을 앓아온 그가 지난 17일 저녁(현지 시간) 스위스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1945년 루마니아 갈라티에서 태어난 루푸는 6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2세인 1957년에 고국에서 열린 데뷔 리사이틀에서 자작곡을 연주하며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낸 이래 전설적인 교육자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디누 리파티의 스승이었던 플로리카 무지체스쿠와 첼라 델라브란체아 등을 사사했다. 1963년 장학금으로 모스크바음악원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했고, 1966년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와 이듬해 루마니아 에네스코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1969년 영국 리즈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런던 무대에서 첫 연주회를 가져 격찬을 받았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 연주 활동을 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루푸는 슈베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 19세기 독일-오스트리아계 작곡가들에 대한 해석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 작곡가인 야나체크와 버르토크의 연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따뜻하고도 자연스러운 음색과 사색적이며 신비로운 음악 스타일로 ‘피아노 위의 수도사’로 불리기도 했다.루푸는 뛰어난 연주 실력만큼이나 '은둔자적 성향'으로도 유명했다. 수십 년 동안 언론 인터뷰나 외부 활동을 철저히 배제하며 건반에만 집중해왔다. 게다가 공연장에서 그의 무대 매너는 투박하기까지 해 괴짜로 불리기도 했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면 무대에 서지 않는 완벽주의자였다. 연주에 앞서 건반의 무게를 일일이 지정할 만큼 까탈스러웠고, 의자도 통상적인 피아노 벤치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요구했다.
라두 루푸는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많은 음악가의 존경을 받았다. 조성진은 루푸를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특히 루푸의 슈베르트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루푸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했던 정경화에게 부탁해 그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조성진은 예전에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루푸는) 프레이징이나 음악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실제 공연을 몇 번 봤는데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며 “하늘에서 신이 치고 있는 듯했다”고 말했다.
루푸는 2012년 11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와 협연으로 국내 클래식 팬들과 만났다. 그의 유일한 내한 공연이었다. 당시 독주회에 참석했던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탐미적인 음색에 집착했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음유시인”이라며 “어느 피아니스트도 낼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수준 높은 음색들을 들려줬다”고 회고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