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핵심협약 오늘부터 발효…"정치파업 늘고 사법만능주의 심화 우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비준(기탁) 1년 만인 20일부터 국내에 적용된다. 정부는 이미 협약 발효에 대비해 노동관계법 개정을 완료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개정 노동관계법이 핵심협약의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계가 추후 국내 노사관계 이슈를 국제 교역 문제로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29호) 등 3개 핵심협약 비준을 강행했다. 정부는 비준을 위한 사전절차로 2020년12월 노동조합법 등 3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법은 핵심협약에 따라 △실업자·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 삭제 △공무원노조 가입 직급 제한 완화 △소방공무원 노조 가입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개정법이 핵심협약 취지에 맞지 않은 부족한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개정법은 핵심협약 취지에 따라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락해줬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해고자가 기업별 노조의 '위원장'은 못하게 제한하는 규정을 뒀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핵심협약에 걸맞는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정치·정책 파업 허용 △근로시간면제 한도 규정 삭제 △파업에 대한 형사처벌 제한 △사업장 전면 점거 허용 등을 담은 추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20일 국회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는 공동 토론회를 열어 공론화에 나선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국회 앞에서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한다. 하지만 정부는 개정된 노사관계법으로 이미 충분하다며 추가 법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8일 발간한 ‘노동정책이슈보고서’를 통해 이번 협약 발효로 노사관계가 새로운 갈등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경총은 “노동계가 ILO에 진정 등을 통해 국내 노사 문제를 국제 이슈화할 수 있게 됐다”며 “협약 미이행국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FTA를 체결한 교역국에서 불공정행위 등을 이유로 분쟁화 할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국내 노동권이 열악한 것으로 오인돼 국내 기업의 이미지 하락도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핵심협약을 근거로 법원이 현행 노조법을 노동계에 유리하게 확장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협약은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신법 우선주의원칙’에 따라 국내법에 우선 적용되므로, 법원이 핵심협약에 근거해 기존 노조법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이미 개정 노조법과 ILO 협약 취지에 따라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창원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금속노조 전략조직부장 A와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장이자 하청업체 해고자인 B가 회사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차를 탄 채로 조선소 내 파업현장에 참가하기 위해 무단 침입한 혐의에 대해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장에 들어간 행위는 개정 노조법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경총은 "노동계가 법원에서 노조법상 근로자 정의 규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특고 종사자의 근로자성,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 등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노동계가 협약에 근거한 실력 행사에 나서면 노동시장 개혁을 내건 차기 정부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