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논점과 관점] '뉴노멀' 재택근무가 던진 과제

유병연 논설위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2년여간 유지됐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돼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직장에선 일상 복귀를 놓고 미묘한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택근무제를 실시했던 기업들이 직원들을 다시 사무실로 불러들이면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미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잇달아 재택근무제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포스코가 이달 초 전 직원 회사 출근을 재개했다.

'출근 복귀' 고심하는 기업들

네이버가 최근 본사 직원 479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선호하는 근무제를 물은 결과, ‘주 5일 재택근무’가 적합하다고 답한 직원이 41.7%에 달했다. 사무실·집에서 일할 수 있는 ‘혼합식 근무’라는 응답도 52.2%였다. ‘주 5일 사무실 출근’이라고 답한 직원은 2.1%에 불과했다. 직원 대부분은 코로나 이전과 같은 전일 사무실 출근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매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6.4%가 ‘코로나 상황이 해소되면 예전 근무 형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는 재난 상황에 따른 강제적인 명령이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는 출근 복귀에 대한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근무 행태에 관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2%가 향후 입사 또는 이직을 준비할 때 재택근무 시행 여부가 입사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실제 미국에선 회사의 사무실 출근 지시가 직원들의 기록적인 자발적 퇴직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기업 성패가 인재 확보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재택근무 시행보다 더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이런 마찰적 갈등을 줄이는 절충안으로 구글, 애플 등 많은 기업이 재택·출근 혼합형 근무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 정도가 중간 수준인 근로자가 재택근무 비중이 아주 높거나 또는 낮은 근로자에 비해 업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같은 하이브리드식 근무가 대안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다변적인 재택근무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재택근무는 아직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등 긴급재난의 경우를 제외하면 사용자가 업무명령으로 재택근무를 명할 수 없다. 다만 단체협약 등에 명시적인 근거가 있을 경우 개별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지시할 수 있다. 피사용자 입장에선 임신을 하거나 어린 자녀를 키우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재택근무 청구권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변화에 대비해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법에 재택근무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명시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근로자가 근무시간 외에는 업무와 관련한 연락을 받지 않는 소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검토도 필요하다. 재택근무로 일과 여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노동 강도가 오히려 세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어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근무 형태 변화는 주 4일 근로제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논의돼온 주 4일 근로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지 4년 만에 주 4일제에 대한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하면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런 갈등 가능성을 관리하는 것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