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보고서 사라진 국회예산정책처…민주당 압박 먹혔나

文정부 초기만 해도 재정건전성 비판
민주당 반발 후 눈에 띄게 잦아들어

다수당이 인사권 좌우하는 구조 탓
정권 바뀌면 다시 비판 목소리 나올듯
정부 정책과 관련해 비판적인 보고서를 내오던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부터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회 사무처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압박에 따른 결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文정부 경제정책 저격하던 예정처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 예산과 결산, 사회보험 등 준조세 관련 국회 심의를 돕기 위해 2004년 설립됐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전문적인 연구·분석을 수행하는 게 목적이다. 각계에서 영입한 120여 명의 분석관이 각종 정부 정책의 재정 타당성을 분석하고 있다.이전에도 국회예산정책처가 정부와 충돌하는 모습은 자주 보였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심했다. 확장재정을 기치로 돈을 푸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재정건전성을 전반적으로 강조하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위기와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의 대립각이 최고조였던 시기는 2019년 10월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대외 충격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재정 지출 증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당일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예산안 총괄분석’을 통해 확장재정 정책의 불합리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재정이 건전하다는 정부 입장에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서는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일수록 경제 위기 시 채무비율이 급등할 수 있으므로 국가채무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케어 확대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건전성과 관련해서는 “2024년 누적 적립금을 다 쓰고 누적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2022년 이후에도 10조원 이상의 누적 적립금을 유지할 것이라는 정부 전망과 정면 배치된다.고용부가 매달 “가입자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고용보험과 관련해서도 비상벨을 울렸다. 올해 고용보험 적자가 1조4436억원으로 작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 고갈될 것이라는 정부 전망에 대해서도 이보다 3년 앞선 2054년 고갈될 것이라는 예상을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기도 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날 선 자료를 내놓을 때마다 각 부처는 해당 발표를 전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형태로 반박 자료를 낸다. 하지만 여야가 함께 있는 입법부 산하 기관으로 ‘중립성’이란 권위를 갖고 있는 만큼 이 같은 반박은 잘 먹히지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2054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추계 방법이 잘못됐다는 자료를 내도 언론과 학계에서는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이 더 비중 있게 인용된다”고 토로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변한 목소리

하지만 국회 관계자들은 이같은 국회예산정책처이 모습이 재작년 하반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정책과 관련된 비판적인 보고서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보좌관은 "자체 생산 자료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예산 추계 등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청해도 정부에 비판적이면 해주지 않는다"며 "예산 행정에 밝은 일부 의원실을 제외하고는 거의 자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보좌관도 "예산안 분석 등 정기 보고서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지만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등 특정 사안을 지적해 비판하는 보고서가 자취를 감췄다"며 "지난해부터 부쩍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같은 입장 변화는 민주당의 국회예산정책처에 대한 비판이 집중된 시점과 일치한다. 2020년 6월 민주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30명은 국회예산정책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예정처의 본래 기능이 정부 견제라고 하지만, 작은 문제를 침소봉대하거나 '지적을 위한 지적'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국회예산정책처가 정부·여당의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앞서 국회예산정책처가 '한국판 뉴딜' 사업 예산이 포함된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이 상당수 편성돼 있다" "한시적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직접 일자리 사업 규모가 과도하다"는 등의 비판을 한데 따른 것이다.

국회 구조상 다수당이 국회예산정책처를 비롯한 국회 조직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다수당이 국회 의장과 사무총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의장과 사무총장이 다수당인 민주당에서 선출되는만큼 국회예산정책처도 민주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국회예산정책처 연구원들의 승진과 재계약 역시 여기에 좌우된다.

실제로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수도 이전과 관련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자 수장을 교체시켰다.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최광 예산정책처장을 면직시키고, 당 수석전문위원 출신을 임명한 것이다.

'모델이 틀렸다' 등 트집

이렇다보니 국회예산정책처 내부에서는 알아서 자기검열에 나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정부 비판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부담을 준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보고서가 나오면 '모델이 틀렸다' '시각이 편향됐다'는 평가가 내려와 연구원들이 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다만 이같은 국회예산정책처의 문자옥은 조만간 풀릴 전망이다. 내달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다수당인 민주당이 야당으로 자리를 바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음 총선까지는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민주당은 국회예산정책처의 윤석열 정부 비판에 대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별다른 압박을 가하지 않을 전망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