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격 너머'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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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현 유통산업부장칠십 후반의 어머니는 오십이 다 된 아들 주려고 마트에서 종종 이것저것 고른다. 양말, 속옷, 라운드 티… 대개 이런 것들이다. 맞벌이 부부가 장 볼 시간 없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얼마 전 “필요한 거 없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비타민이 떨어지긴 했는데, 행사 자주 하니 그때 사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가격이 매주 오른다. 필요할 때 바로 사야지, 기다리면 낭패야.”
고삐 풀린 장바구니 물가
비타민값이 정말 매주 오르지는 않을 터다. 그렇더라도 이런 얘기를 과장으로 치부해버리기는 어렵다. 20일 한국소비자원의 가격정보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햇반(3개들이)은 작년 말 4906원에서 이날 5108원으로, 4개월여 만에 4.1% 상승했다. 해찬들 우리뜰태양초골드(1㎏) 19.8%, 비비고 육개장(500g) 19.0% 등 안 오른 상품을 찾기 쉽지 않다.내로라하는 대기업 직장인들이야 물가 오르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월급이 뛴다. 하지만 저소득층에는 다른 문제다. 의식주 비용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까지 더해져 살림살이가 더욱 곤궁해지고 있다.한 세기를 살면서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목도한 찰리 멍거 벅셔 해서웨이 부회장(98)의 최근 발언은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인플레는 민주주의를 죽입니다. 핵전쟁을 제외한 최대 위험이지요.”
그런데도 현 정부와 차기 정부(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일상 회복’을 핑계로 한쪽으로는 돈을 풀면서 다른 쪽으로는 “물가를 잡겠다”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예산을 투입해 오는 6~7월 4개 프로 스포츠 종목의 반값 티켓 40만 장, 숙박시설 할인권 114만 장을 뿌리겠다고 지난 15일 공언했다. 소비를 자극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영화 관람료 인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업계와 소통하겠다”고 했다.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인수위라고 다르지 않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추가경정예산을 물가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10일 기자간담회)고 한 것은 이율배반이다. 물가 안정을 차기 정부 최대 과제로 꼽으면서 50조원을 뿌리겠다니. 6·1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 추경호’와 인플레를 잡아야 할 ‘경제부총리 추경호’의 충돌인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천문학적 자금이 풀렸다. 물류대란, 우크라이나 전쟁 변수까지 더해져 정부가 대응할 정책 수단은 극히 적다.
추 후보자도 얘기했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새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세제 개선, 수급 안정 노력, 유통구조 개선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중에서도 오랜 기간 ‘장바구니’에 부담을 가중해 온 비현실적 규제를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시장구조 개혁에 집중해야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농·어촌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 급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현재 불법인 파견근로를 허용해 줄 것을 원하고 있다.인건비 거품을 빼 농수산물 가격을 다소 낮출 수 있는 한 방안이다. 새 정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런 게 아닐까 한다. 생산·유통의 전 단계에 쌓여 있는 군살에 메스를 대 그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티는 나지 않는다. 궂은 일을 새 정부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단기 성과에 연연해 업계와 공공기관의 팔을 비트는 구태를 답습할 게 뻔하다”는 냉소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