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들 "다수당이 국회 형해화"…검찰 지휘부 책임도 거론(종합)

'검수완박' 강행 민주당 사보임·'위장 탈당' 비판
검찰총장·고위 간부들 향해 "책임 있는 자세 보여달라"…사실상 사퇴 촉구
사상 처음으로 전국 단위 대표회의를 개최한 부장검사들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 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 부장검사 대표 69명은 철야 토론을 끝낸 21일 오전 입장문을 내고 "172석의 다수당이 법안 발의 후 2∼3주 만에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며 "다수의 일방적 입법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마련된 국회 안건조정 제도를 비정상적 방법으로 형해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형사절차 기본법을 사실상 전면 개정하면서도 청문회, 공청회 등 숙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검찰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정작 입법 과정은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병석 국회의장, 여야 의원들에게 "이 사안의 역사적 의미와 헌정사에 끼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살펴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전날 전격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 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여야 3 대 3 구도인 안건조정위원회를 사실상 4 대 2 구도(민주당 3·무소속 1·국민의힘 2)로 만드는 '꼼수'를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기구로,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부장검사들은 김오수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도 요구했다.

이들은 검수완박법을 '범죄방치법'이라 비판한 평검사들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박탈되는 것은 검찰 수사권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이다. 형사사법 체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총장님과 고위 간부들이 다시 한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직을 걸고 법안을 저지해달라는 취지로, 사실상 이들에 대한 사퇴 요구로 해석된다.

회의에선 입장문에 김 총장에 대한 직접적인 사퇴 요구 문구를 넣자는 '강경파'들의 의견도 나왔다.

또 검사장급 이상이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사퇴 요구는 적절하지 않다는 '신중파'들의 의견도 많았고, 토론을 거쳐 완곡한 표현으로 수정됐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현직 부장검사는 "첨예한 의견 대립은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분위기였다"며 "총장과 지휘부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가 가장 큰 화두였고, 조금씩 생각은 달랐지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했다"고 전했다.

부장검사들은 수사권 박탈로 인한 수사 공백도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음주사고, 폭행, 사기, 성폭력 등 민생 사건에서는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단계적 점검 시스템이 사라져 피해자의 권리 구제가 약화할 것이고, 검사가 주로 담당했던 부패·경제·공직자범죄 등 구조적 비리에 대해서는 메꿀 수 없는 수사 공백이 발생해 거악이 활개치고 다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참사 사건에서 검경이 합동수사하는 것도 더이상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다.

검찰 내 실무 책임자들인 부장검사들은 "그동안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있어 국민 신뢰를 온전히 얻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한다"고도 했다.

이어 "수사 개시와 종결에 이르기까지 내부 점검과 국민 감시를 철저히 받는 방안 등을 검토해 대검에 건의할 계획이고, 검사장 회의에서 제시한 국회 특위가 구성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회의에서는 또 검찰 수사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제도 개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도 토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평검사대표회의에서도 언급된 영미법계 대배심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별도 수사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거론됐다.

부장검사들은 고참급인 사법연수원 31기 검사들을 주축으로 의장단을 꾸려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검사들의 공개적인 의견 표명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광주고검, 수원지검, 전주지검, 부산지검은 각 청사에서 검사장·차장검사 등이 주재하는 기자 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비판 입장을 설명한다.

차장검사급 간부들 역시 전국 단위 회의 개최 여부를 검토중이다.

서울고검 산하 검찰청 소속 수사관들도 이날 검찰 수사관 회의를 열고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검찰 수사관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의 '입법 꼼수'를 비판하는 내부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검수완박 논란을 국회 상황에 빗대 "국회가 입법권, 예산심사권을 남용하는 일이 생겼다고 정부 입법, 정부 편성 예산의 '당부'만 판단하고, 문제가 있어도 직접 수정하지 못하고 정부에 재입법, 예산재편성 요구만 하라고 하면 국회의 본질적 기능이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내 강경파인 김용민 의원을 향해 "진지하게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전날 김 의원은 조종태 광주고검장으로부터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국회가 우습냐고 하셨더군요.

제가 묻고 싶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우스운가요?" 라는 문자를 받고는 이를 그대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이게 국회의원에게 검사가 보낼 문자인가"라고 비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