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종합상사의 화려한 부활

자원개발·신사업 앞세운 그룹 ‘돌격대장’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 중인 미얀마 해상 가스전.
국내 종합상사 ‘빅4’가 글로벌 원자재 대란 및 물류운임 상승에 힘입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종합상사는 1970~1980년대 고도 성장시기 ‘수출입국’의 기치 아래 수출창구 역할의 중책을 맡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요 기업의 수출 역량이 높아지면서 사세가 급격히 하락했다. 역사 저편으로 저무는 듯했던 종합상사가 자원개발과 친환경 신사업을 앞세워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급 실적 낸 종합상사

21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올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는 1592억원으로, 전년 동기(1269억원) 대비 25.5%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매출도 24.2% 증가한 8조8011억원을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매출의 90%가 넘는 철강 등 중계무역(트레이딩) 수익성이 업황 호조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대폭 개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유가에 연동하는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한 효과도 톡톡히 봤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 일찌감치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이 전신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3년부터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LX인터내셔널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457억원으로 전년 동 대비 116.9%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매출액은 33.5% 늘어난 4조9181억원이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최대다. 팜오일(팜유)과 유연탄(석탄) 등 LX인터내셔널이 취급하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업계는 트레이딩이 주력사업인 삼성물산 상사부문 및 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도 원자재값 상승과 물류량 증가에 힘입어 올 1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대폭 개선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물산, LX인터내셔널, 현대코퍼레이션 등 국내 종합상사 ‘빅4’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4726억원으로, 전년(1조4913억원) 대비 65.8% 증가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물류대란 및 업황 호조에 따른 원자재값 상승의 영향을 톡톡히 누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원자재 대란이 기승을 부리면서 트레이딩뿐 아니라 자원개발에 앞장섰던 상사업계가 역대급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합상사의 재빠른 변신

통상 종합상사의 주력 사업은 트레이딩이다. 고객사와 제조사 간 중개를 통해 제품을 대신 팔고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종합상사는 1975년 정부의 수출진흥정책에 따라 종합무역상사제도가 시행되면서 잇따라 설립됐다. 종합상사로 지정되면 세제·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99년 당시 종합상사 수출이 국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에 달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주요 기업의 수출 역량이 높아지고, 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줄이면서 종합상사의 사세는 급격히 하락했다. 2009년엔 종합무역상사제도가 폐지됐다. 2020년 기준 종합상사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대에 불과하다. 최근 10년새 국내 종합상사 ‘빅4’의 영업이익 합계가 1조원을 넘은 해도 거의 없었다.종합상사업계는 급변하는 무역과 산업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변신에 주력했다. 신시장 및 자원개발 등 신사업을 개척하는 ‘종합사업회사’로 탈바꿈하는 추세다. 최근 종합상사는 각 그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신사업의 ‘돌격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트레이딩과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와 리스크 관리 능력이야말로 신사업을 추진할 때 필요한 역량”이라고 밝혔다.

국내 종합상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액화천연가스(LNG) △식량 △부품소재 등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밸류체인을 확장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 일찌감치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3년부터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 구동모터코어와 함께 수소전기차 부품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포승 바이오매스 발전소’ 전경
LX인터내셔널은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에 본격 진출할 채비를 갖췄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DL에너지가 보유한 포승그린파워 지분 63.3%를 950억원에 인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포승그린파워는 DL에너지 자회사로 포승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운영한다. 친환경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을 안정적 수익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현대코퍼레이션도 지난달 30일 주주총회에서 친환경 리사이클 사업 및 신기술사업회사 및 벤처캐피탈 등에 대한 투자 및 관련 사업 등 사업목적을 추가했다. 장기적으로 수소·전기차 분야에 진출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이 완공한 캐나다 풍력·태양광발전 단지
삼성물산은 ‘빅4’ 종합상사 중 유일하게 화학, 철강, 에너지 등 트레이딩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2020년 10월 탈석탄 선언을 계기로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2018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대규모 풍력·태양광 발전단지를 완공한 데 이어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딩에만 의존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사업과 신시장 개척을 통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종합상사가 그룹의 신사업 첨병 역할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