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조작 의혹 환경영향평가서…"수십년 업계 관행이 문제"

"갑을 관계 속 평가 비용·내용 모두 발주자 맞춤형 우려"
평가비용 공탁제·평가인력 체계적 양성 등 대책 서둘러야
부산에서 환경영향평가 무더기 조작 의혹이 적발된 것과 관련해 환경단체들은 "터질게 터졌다"면서도 업계의 갑을 관계와 같은 기형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1일 부산지역 환경단체와 관련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에 기소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 문제는 해당 업계에서 20∼30년간 이어져 온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사업의 발주처와 환경영향평가 조사 업체 사이에 형성된 이른바 갑을 관계가 주요 문제라는 것이다.

현행법상 환경영향평가 조사 비용은 사업자가 산정하도록 돼 있다. 전문가와 환경부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환경영향평가협의회가 평가를 위한 기본 자료를 보내면 사업자가 이를 토대로 조사 비용을 직접 산정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해당 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 업체까지 직접 선정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자는 적은 금액으로 조사를 진행하려 하고, 조사를 맡을 업체 상대로 일명 '가격 후려치기'를 하거나 자신들 입맛에 맞는 조사 결과를 요구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위상 우위에 놓인 지자체 등 발주처가 저렴한 가격의 다른 업체를 구한다고 하면 기존 업체도 요구하는 가격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며 "곤충, 해양, 동식물 등 여러 전문가가 필요해 인건비가 많이 드는데 저가 수주를 하다보면 조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환경영향평가 수주를 위해서는 발주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하는 만큼 발주자에게 유리한 조사결과를 내놓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라면서 "정확한 조사보다는 부실한 조사, 맞춤형 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결국 비용은 적게 들이면서도 발주자 입장을 반영하고 환경부 승인을 무사히 받을 수 있는 보고서를 작성해 주는 업체가 수주전에서 승승장구하게 되는 구조다. 환경 조사 분야는 일반인이 잘 알기 어렵다 보니 1개 업체가 하루 수십개의 사업장 현지 조사를 나갔다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근본적으로 환경영향평가는 거짓으로 작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대저대교의 환경영향평가 조작은 환경단체가 현장을 워낙 잘 알다 보니 조작 사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사업자에게 조사 비용 산정을 맡기다 보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로 체계가 구축됐다"며 "워낙 돈이 되다 보니 조작 의혹으로 업계에서 퇴출당했다가도 타인의 이름을 빌려 다시 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등은 이런 관행을 없앨 대안으로 '환경영향평가 비용 공탁제' 도입을 주장한다.

이 제도는 사업자가 환경평가 비용을 산정한 뒤 해당 비용을 공탁기관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공탁기관에서 해당 업무를 맡게 되면 사업자가 비용을 임의로 조정하지 않게 되고, 사업자의 입김에서 벗어나 산정한 비용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할 수 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환경부는 그동안 발주처가 적정하지 않은 금액으로 조사를 진행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며 "제3의 기관에서 환경영향평가 업무를 공정하게 관리하면 환경평가 조사 업체도 투명하게 선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등 전문 교육기관에서 환경영향평가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는 현지 조사를 가기 때문에 산을 타고, 강을 건너는 등 일이 고단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공탁제 실시와 관련된 타당성 검토 용역을 진행해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 업계의 갑을 구조 등으로 평가의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여러 번 제기됐다"며 "공탁제 타당성 용역을 통해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