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 회장, 후계자에 물려줬던 CEO자리 1년만에 복귀…사명 NIDEC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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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 준 전 CEO는 COO로 강등세계 최대 모터회사 일본전산(Nidec)의 창업주인 나가모리 시게노부(77·사진) 회장이 경영에 손을 뗀 지 약 10개월만에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다.21일(현지시간) 일본전산은 나가모리 회장이 신임 CEO로 임명됐다고 발표했다. 회사명도 바꾼다. 내년 4월 일본전산이란 사명을 회사의 영문명인 니덱(NIDEC)으로 교체할 방침이다. 전임 CEO였던 세키 준(60)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게 됐다.세키 COO는 나가모리 회장의 후계자로 CEO가 된 지 1년도 채 안 돼 좌천됐다. 겉으로 드러난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 전산의 매출은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실적에 비해 주가가 예상치를 밑돌며 CEO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위기 관리 실패와 주가 하락이 사임 이유
3년 뒤 세대 교체 피력
일본 전산의 최대 주주인 나가모리 회장은 이날 열린 온라인 컨퍼런스에서 CEO 교체에 대해 “매일 주가 그래프를 보며 절망했다”며 “결단이 필요했다. 단기간에 지휘권을 잡고 위기를 타개해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21일 도쿄증시에서 일본 전산의 주가는 주당 8970엔(약 9만원)으로 마감했다. 세키 COO가 대표이사직에 올랐던 2021년 6월에는 주당 1만 2000엔(약 12만원) 수준이었다. 나가모리 회장은 “도저히 지금 주가를 용납할 수 없었다. 주가가 주당 1만엔 수준이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나가모리 회장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세키 COO는 2020년 닛산 자동차에서 니덱으로 이직했다. 같은 해 4월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2021년 6월 전기자동차(EV)를 비롯해 자동차 모터 사업 확장을 시작하며 세키 COO가 CEO로 등극했다. 2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것이다.
세키 COO가 취임 이후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전산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17%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중국 상하이가 봉쇄되며 생산효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현재 '비상사태'에 대처하려 일시적으로 CEO를 맡은 거라고 공언했다. 그는 “세키 COO는 위기 대처 능력이 없다”며 “대신 세키 COO에게 일본 전산의 속도감 있는 경영 스타일을 배울 수 있도록 3년 시간을 주겠다. 그때 다시 CEO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키 COO도 “현재 위기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며 “3년 뒤 대표직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나가모리 회장은 1973년에 일본전산을 설립했다. 60여회 인수합병(M&A)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 제조업체를 일궈냈다. 일본 전산의 시가총액은 약 5조 3000억엔(약 53조원)으로 일본 대표기업 중 하나인 파나소닉 홀딩스 시가총액의 두 배를 웃돈다.
모터 왕국을 세웠지만, 후계자를 고르는 게 난항이다. 칼소닉 칸세이(현 마렐리) 회장을 역임한 쿠레 분세이 등이 후임자 후보로 추천됐지만, CEO로 지명되지 않았다. 2018년 닛산 출신인 요시모토 히로유키가 사장을 맡았지만 2년 뒤 실적 악화 탓에 부사장으로 강등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