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머스크의 트위터 M&A작전을 보면서

美서 기업 인수땐 공개매수 필수
이사회의 주주 이익 의무가 핵심
물적분할 후 상장도 美선 불가능

주주 가치·혁신 함께 보호하려면
'경영권 보호장치'도 도입해야

유창재 증권부 마켓인사이트 팀장
‘Love me tender.’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포스팅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명한 노래 제목하나 올렸을 뿐인데 시장 반응이 뜨겁다. 머스크는 이달 초 트위터 지분 9.2%를 사들였다. 그리고 지난주 공개매수(tender offer)를 선언했다. 트위터 주식 전량을 주당 54.20달러, 총 434억달러(약 53조원)에 인수하겠다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제안 뒤에 Love me tender라니….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가 성사될지는 알 수 없으나 유머감각 하나는 인정해야 한다.머스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미국 자본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이런 장면들은 경제 기자인 필자를 흥분시킨다. 케이블TV의 연예 프로그램이나 지상파 주말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이렇게 흥미로운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일까?

머스크 덕분에 한국에서도 나름 핫한 키워드가 된 tender offer는 상장된 주식을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모두 사주겠다는 제안이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상장사 M&A는 적대적이든 그렇지 않든 공개매수를 통해 이뤄진다. 삼성전자가 2017년 미국 프리미엄 오디오 회사 하만을 인수할 때도 공개매수를 거쳤다. 공개매수를 의무화한 법 조항은 없지만, 모든 주주에게 대주주와 똑같은 가격에 주식을 팔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이사회가 주주들로부터 거액의 집단소송을 당한다.
누군가 공개매수를 선언하면 해당 회사의 이사회는 이 제안이 모든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제안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여야 한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더라도 유예기간을 두고 혹시 더 나은 조건의 제안을 하는 곳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역시 집단소송 위험에 처한다. 트위터 이사회도 “머스크의 제안을 신중하면서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JP모간과 골드만삭스를 자문사로 고용했다.미국에서 경영권 시장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가능케 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 이사회에 부여된 신의성실 원칙(fiduciary duty)이다. 미국 상법은 주주의 대리인인 이사회가 ‘주주와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한다. 물론 한국 상법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규정할 뿐 ‘주주’에 대한 의무는 빠져 있다. 한국에서 공개매수를 통한 M&A가 사실상 전무한 이유다.

만약 트위터가 한국에 상장된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머스크는 트위터의 주요 주주인 뱅가드그룹, 모건스탠리, 블랙록 등을 찾아가 이들 지분만 웃돈을 주고 사들이는 협상을 했을 것이다. 소액주주들은 혜택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는 M&A뿐 아니라 회사 분할, 상장 등 모든 의사결정에 적용된다.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자회사 물적분할 후 상장은 미국에선 불가능하다. 주주 간 이해 상충 우려가 있는 거래를 이사회가 승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은 2015년 지주회사 알파벳을 신설해 인터넷 사업을 하는 구글과 미래 성장 사업을 하는 다른 자회사들을 지배하도록 했다. 주주들의 반발은 없었다. 기존 구글 주식 1주를 알파벳 주식 1주로 받았고, 자회사들은 비상장 상태로 남았기 때문이다.한국에도 ‘게임체인저’ 법안이 나왔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이사회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이익’을 추가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에서도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이 대폭 강화될 것이다. 경영권 시장이 살아나고 투자자들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만 새로운 게임판을 짤 때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룰이 있다. 역시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경영권 보호장치다. 구글은 2015년 알파벳 신주를 발행하면서 의결권이 있는 주식과 없는 주식을 따로 발행했다. 경영진이 월가의 과도한 간섭을 받지 않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한국처럼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는 시장이었다면 알파벳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위터 이사회도 머스크에 맞서 포이즌 필(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싸게 발행해 적대적 M&A 시도를 막는 장치)을 발동한 상태다.

주주 가치가 보호되는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은 혁신을 지원한다. 성공한 혁신은 다시 시장을 윤택하게 한다. 소액주주들도 다 같이 혜택을 누린다. 새 정권이 이렇게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시장을 만든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 정권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